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직접 만나 ‘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70억~80억원 추가지원’과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를 서로 맞거래하는 장면이 담긴 회의록 자료가 나왔다. 안 전 수석과 케이스포츠재단의 ‘진짜 주인’인 최순실씨가 에스케이(SK)와 롯데에 검찰 수사 등 각 기업이 처해 있는 약점을 고리로 각각 80억원과 70억원을 받아내려 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세무조사까지 동원한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한겨레>가 2일 입수한 케이스포츠재단의 회의록 자료 등을 보면, 지난 2월26일 오전 10시40분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회의실에서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중근 부영 회장과 부영 김아무개 사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케이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이 최순실씨의 지시를 받고 참석했다.
회의록 자료에는 안 수석과 함께 나온 재단 쪽이 먼저 “부영에 5대 거점 지역(5대 거점 체육 인재 육성사업) 중 우선 1개(하남) 거점 시설 건립과 운영 지원을 부탁드린다. 1개 거점에 대략 70억~80억 정도 될 것 같다”며 “건설회사라고 해서 본인들(부영)이 시설을 건립하시라는 것은 아니고 재정적인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운을 떼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이중근 부영 회장은 “최선을 다해서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도 “다만 현재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세무조사에 대해 편의를 봐달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제시한다. 이 회의는 금요일 오전 열린 만큼 안 전 수석은 근무시간에 업무 외 일을 본 셈이다. 대기업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장면이 포착된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중근 회장은 세무조사와 전혀 무관한 케이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감한 문제를 서슴없이 이야기한 것이다. 검찰은 2일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재단 관계자들을 불러 참고인 진술을 받고 회의 자료를 제출받아 부영그룹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부영그룹은 지난해 12월께부터 해외 법인들을 통한 소유주 일가의 탈세 의혹과 관련해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안 수석과 케이스포츠재단을 만나기 직전인 2월 중순에는 서울 서소문 본사에까지 조사관이 들이닥쳐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을 압수당했다.
이날 이야기된 추가지원금은 실제로 케이재단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재단 관계자는 “이러한 회의 내용을 회장(최순실씨)에게 보고하니, ‘조건을 붙여서 한다면 놔두라’고 지시해 결과적으로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노골적인 조건’을 내건 부영 쪽 돈은 이후 기업 쪽의 폭로 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어 조심한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 뒤 지난 4월 부영과 이 회장 등을 절차대로 검찰에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돈이 입금되지 않았더라도 안 전 수석과 최순실씨, 부영 모두에 ‘제3자 뇌물제공·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송상교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형법은 제3자 뇌물제공 등의 구성요건으로 직접 제공뿐만 아니라, 약속 또는 의사표시를 한 것까지를 광범위하게 적시하고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대기업 회장이 만나 재단 지원과 세무조사를 직접 언급한 것만으로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부영은 이날 만남 아흐레 전(2월17일) 출연금 명목으로 3억원을 케이스포츠재단 계좌에 입금했다. 이날 이 회장의 발언에 비춰 출연금도 ‘세무조사 편의’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송 변호사는 “출연금과 부영 세무조사 사이의 인과관계가 분명해진다면 입금된 출연금은 뇌물이 되고, 뇌물이 보내진 만큼 처벌 수위는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재계 순위 21위(2016년, 자산 기준)인 부영은 그룹 순위대로 15개 기업집단이 출연한 케이스포츠재단에 재계 순위에 걸맞지 않은 돈을 출연해 의문을 낳아왔다. 이에 대해 부영 쪽은 “이중근 회장이 안종범 전 수석과 만난 바는 없다. 단지 김 사장이 케이재단 쪽 사람들을 만나 추가지원 요청을 받았지만 사정이 어렵고 세무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지원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표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