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2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2년2개월여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치의 새판짜기를 선언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개헌’을 주창하며 돌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 전 대표의 귀환으로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가 형성될지 관심을 모은다.
손 전 대표는 20일 정계복귀 기자회견에서 “87년 헌법체제가 만든 6공화국은 명운을 다했다”며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일을 위해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당대표를 하며 얻은 모든 기득권과 당적도 버리겠다”며 “명운이 다한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손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의 새판을 짜기 위해 반드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은) 그만큼 비장한 각오라는 심경을 내비친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에 동의하는 주요 정치인과 세력을 끌어모아 기존의 정치판을 최대한 흔들어 정치적 운신폭을 키워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정계에 복귀한 손 전 대표는 당분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을 활동의 근거지로 삼아, 제3의 정당을 만들기보다는 정치 기득권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새 판을 짜는 ‘국민운동체’ 등 캠페인 활동을 벌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손 전 대표의 탈당 선언은 최측근 등 극소수 인사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깜짝 발표’로 이뤄졌다. 양승조·조정식·이찬열·전혜숙 의원 등 민주당 내 손학규계 의원 10여명도 기자회견 1시간 전 손 전 대표와 찻집에서 만난 자리에서 탈당 의사를 처음 전해 들었다고 조정식 의원이 말했다. 이들 의원들은 탈당을 만류했지만 손 전 대표는 결심을 뒤집지 않았다.
손 전 대표의 이날 정계복귀 선언은 공교롭게도 야권의 대선주자로 ‘대세론’을 구축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란 악재를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졌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9년 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대표가 ‘철새’, ‘보따리장사’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탈당을 선택한 건 문 전 대표가 있는 민주당에 복귀하기보다는 탈당해 제3지대에 머물며 세력을 규합한 뒤 정치적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승산이 있다고 본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손 전 대표가 각각 ‘비패권지대’와 ‘정상지대’란 이름으로 제3지대를 추구하고 있는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개헌에 찬성하는 여야 의원들과 연대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손 전 대표와 정 전 의장은 분권형 개헌론자들이고, 김종인 전 대표는 내각제 개헌론자다. 이들은 모두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외연확대라는 측면에서 친박이나 친문 등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면 새누리당 쪽과도 언제든 연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장 김종인 전 대표는 손 전 대표의 개헌 주장을 “잘 한 것”이라며 반겼다. 그는 이날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손 전 대표 탈당의 의미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활동할 행동반경이 막혔다는 걸 의미하는 등 당이 더 이상 확장성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라며 “서울에 왔으니 만날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대표의 탈당 소식에 두 야당은 다소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야권 대통령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손 전 대표 정계복귀는 야권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며 “특히 당적을 이탈하였기에 열린 정당(인) 국민의당과 함께 하자고 거듭 제안한다”고 적었다. 앞서 지난 8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전남 강진에서 손 전 대표와 회동을 가진 바 있는데, 당시 회동을 놓고 안 전 대표가 손 전 대표에 국민의당 입당 의사를 타진했거나 내년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반면 민주당 쪽에선 이날 공식 논평을 내지 않은 채, 윤관석 수석대변인이 “당에 돌아와 함께 힘모아 내년 정권 교체에 큰 역할을 해주실 것을 기대했는데 탈당을 하게 돼 안타깝다”는 구두 논평으로 대신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 전 대표의 탈당으로 당의 대선 전략을 짜는 데 변수가 생겼지만, (손 전 대표의 지지율 등을 고려했을 때) 아주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민주당 내 손학규계 의원들 중에선 이찬열 의원이 손 전 대표를 좇아 탈당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그는 통화에서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들어보고 21일까지는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엄지원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