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위 회의록으로 본 미르 의혹
작년 11월 포스코 이사회 참석 뒤
문예의 회의서 ‘출연결정 상황’ 전해
”포스코 30억 내는데 부결 못하게 해”
짜놓은 각본에 ‘거수기 노릇’ 성토
문예기금 활용 배제한 재단 설립에
“시비를 한번 걸어야” 동의 구하자
박명진 위원장도 “메세나 있는데 왜…”
문체부 문의 약속…후속 논의는 안해
작년 11월 포스코 이사회 참석 뒤
문예의 회의서 ‘출연결정 상황’ 전해
”포스코 30억 내는데 부결 못하게 해”
짜놓은 각본에 ‘거수기 노릇’ 성토
문예기금 활용 배제한 재단 설립에
“시비를 한번 걸어야” 동의 구하자
박명진 위원장도 “메세나 있는데 왜…”
문체부 문의 약속…후속 논의는 안해
지난해 11월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회의에서 나온 박병원 위원의 ‘미르재단 강제모금 비판’ 발언은 그가 국내 사용자 단체의 대표격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현직 회장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경총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재계 이익을 대변하고 대정부 압력단체 구실을 하는 ‘경제5단체’ 가운데 하나다.
당시 문예위 회의는 오후 5시 박명진 위원장 주재로 위원 8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대학로 장애인문화예술센터(이음센터) 5층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11명의 문예위원 가운데 한 명인 박병원 경총 회장은 이날 강남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1시간쯤 늦은 저녁 6시께 회의에 합류했다. 박 회장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포스코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다.
다른 안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던 중 박 회장이 “오늘 포스코 이사회에서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며 미르재단 설립에 포스코가 3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 문예위 차원의 대응을 주문한다. 박 회장이 이날 회의에서 미르 재단 건을 언급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정부가 전경련을 창구 삼아 대기업으로부터 강압적으로 기금을 거둬들이는 것에 대해 사용자 단체 대표로서 느낀 분노, 그리고 미르재단의 사업 영역이 기존 문예위의 업무와 중복돼 발생하는 비효율·낭비에 대한 우려다.
실제 박 회장은 “대기업의 발목을 비틀어서”라는 직설적 표현과 함께 “(포스코) 이사회에서 부결시키면 안 된다고 해서 부결도 못하고 왔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며 기금 출연을 강제한 정부 쪽을 강하게 비판한다. 포스코 홈페이지를 보면 같은날 열린 이사회에서 ‘재단법인 미르 기금 출연’을 가결했다고 나온다.
박 회장은 또 국제문화예술교류는 이미 문예위가 ‘문예진흥기금’을 통해 집행 중인 사업 분야라는 점을 언급하며 사무국과 이사회 운영 등에 추가적 간접비용이 들어갈 별도의 재단 설립이 국가적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 회장의 지적에 박명진 위원장도 “굉장히 좋은 의견을 주셨다”며 호응한다.
문예위의 이런 기류에는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확산시킨다” 취지로 설립된 미르재단의 업무가 문예위의 국제교류 사업이나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과 겹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문예진흥기금을 조성·관리·운용하는 주체인 문예위는 △한국예술 국제교류 지원 △국제교류 플랫폼 협력지원 △해외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 등 6개 분야의 국제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28억원에 이어 올해 29억원의 예산을 편성해둔 상태다. 문예위는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취지로 1994년 설립한 사단법인 메세나협회의 이사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회의에서 박 회장의 문제제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문체부에 문의해 다음 회의에서 답을 드리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 회장은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후속 논의는 특별히 없었다. 박 위원장이 알아는 봤겠지만, 다 알다시피 당시는 (일을 바로잡기엔) 이미 물건너간 상황이 아니었느냐”고 했다. 포스코 이사회의 미르재단 출연 결정과 관련해선 “포스코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국제교류가 시급했으면) 정부가 문예진흥기금에서 출연해 사업을 추진해도 될 일을 굳이 따로 재단을 만든 게…”라며 미르재단의 설립 자체가 정상적 과정이 아니었다는 견해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세영 이정애 기자 monad@hani.co.kr
박병원은 누구
정부가 미르재단 설립 기금을 강제 모금하고 있다고 비판한 박병원(64)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두루 맡았던 ‘친정부’ 인사다. 지난해 2월 그가 포스코 사외이사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경제개혁연대는 “사외이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독립성 측면에서 의문”이라고 선임 반대 논평을 내기도 했다.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17회로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참여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제1차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데 이어,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2008년~2009년)으로 발탁됐다. 이후엔 전국은행연합회 회장(2011년~2014년) 등을 지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3년 4월엔 은행연합회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대선 핵심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의 초대 이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은행연합회 임기가 끝나고 3개월 뒤인 지난해 2월엔 비기업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경총 회장에 취임했고, 개각 때마다 박근혜 정부 경제팀에 들어갈 관료 출신 주요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부산 출신인 그는 대표적 친박계인 서병수 부산시장과 부산중 동기로 친분이 깊다. 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는 지금도 정기 모임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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