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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개헌의 열쇠는 ‘시민의 힘’

등록 2016-06-19 21:52수정 2016-06-19 23:22

탁상공론 넘어 국민 관심사로
대통령 측근 인사까지 동조
국민 70%·국회의원 83% 찬성
문제는 결국 ‘어떤 개헌인가’
여 이원집정부제 야 대통령중임제
정치세력 따라 선호방식 달라

국가전략포럼이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란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가전략포럼이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란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개원사에서 물꼬를 튼 뒤 일부 대선 주자와 유력 정치인들이 호응하고, 개헌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되면서 개헌론은 정치인들의 탁상공론을 넘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최근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종섭 의원 등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까지 개헌론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시기가 문제일 뿐, 개헌은 결국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낙관론에도 힘이 실린다.

하지만 학계와 정치권 전문가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개헌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과 개헌이 실제 이뤄지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개헌을 논할 시점이 무르익은 건 맞지만, 개헌까지 가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다. 단순한 논의 단계를 넘어 개헌이라는 목표 지점까지 도달하려면 개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이해도는 물론, 정치권 내부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 등 극복할 변수가 만만찮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개헌에 대한 찬성 여론이 반대론을 압도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개헌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한다. 실제 지난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서 개헌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69.8%로, 공감하지 않는다(12.5%)는 응답의 5배가 넘었다. 하지만 같은 기관이 2014년 10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개헌 찬성론이 70.3%에 이르렀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 비율은 꾸준히 70% 안팎을 오르내렸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서라기보다, 신뢰가 가지 않는 현행 정치체제에 대한 반감을 개헌에 대한 호감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공개된 <연합뉴스>의 국회의원 전수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20대 국회의원(300명)의 83.3%(250명)가 개헌에 찬성했다고 하지만, 지난 19대 국회 때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2014년 10월 <시비에스>(CBS)의 전수조사에서도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이 231명이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든 내각제든 지금 논의되는 모든 개헌은 대통령 권력을 약화시키고 국회 권한을 키우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여기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고 했다.

개헌이 현실적인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지금처럼 국회의장과 일부 대선주자들이 움직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정치권과 학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개헌의 추진 주체는 청와대와 정당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1987년 민주화 이후 청와대와 국회는 개헌과 관련해 꾸준히 엇박자를 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한나라당은 거부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국회 중심의 개헌 논의’를 주문했을 때는 야당이 외면했다. 반면 2014년 집권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띄우자 청와대가 격노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박근혜 청와대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잇따라 개헌론의 운을 떼는 게 단적인 예다. 이철희 더민주 전략기획위원장은 “박 대통령도 퇴임 이후를 생각하면 ‘국정 블랙홀’ 운운하며 개헌 논의를 봉쇄할 상황이 아니다. 청와대 역시 개헌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개헌이냐 아니냐’가 개헌 추진의 변수가 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질 것이란 얘기다.

관건은 결국 ‘어떤 개헌인가’를 둘러싼 정치세력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개헌의 내용에 대해선 현재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전문가와 일반 여론 사이의 간극이 크다. 권력구조와 관련해 보수진영과 여당은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선호하지만, 진보진영과 야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수여당의 이원집정부제 선호는 대통령 권력을 야당에 넘겨줘도 의회에서 세력 우위를 지키는 한 정치적 영향력을 보전할 수 있다는 셈법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진보진영과 야당은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개헌보다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 우호적이다. 강원택 교수는 “현재로선 개헌 여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못잖게 (권력구조를) 무엇으로 바꿔야 한다는 합의가 없다는 게 걸림돌”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선 ‘시민사회의 압력’이 개헌 논의의 교착상태를 풀 열쇠라고 말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힘든 정당이나 대선주자에게 개헌 논의를 맡겨선 합의 도출이 힘드니, 시민사회가 개헌의 시기와 폭, 형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정치권을 압박해들어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안하는 ‘범국민적 개헌추진기구’도 그중 하나다. 1987년 야당과 재야, 학생·시민·종교계 등을 포괄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유사한 연대기구를 만들어 풀뿌리 단체와 시민, 학계,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범국민적 캠페인을 펼치고, 정치권과 시민들을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담당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1987년 개헌은 직선제라는 국민적 합의에 뿌리를 둔 치열한 사회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87년 헌정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개헌운동이 ‘제2의 민주화운동’으로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개헌 논의 역시 임기말 어김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그들만의 리그’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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