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정세균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수락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며 의원들의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대국회 의장단 선출
초선 의원 압도적 지지로
경쟁자 문희상 꺾고 의장 당선
정세균 “권한 적극 행사하되
책임도 지는 협치모델 정립”
초선 의원 압도적 지지로
경쟁자 문희상 꺾고 의장 당선
정세균 “권한 적극 행사하되
책임도 지는 협치모델 정립”
“정치인은 항상 말조심해야 한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여간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뱉은 말에 발목잡혀 일을 그르치는 정치인들을 숱하게 목격해온 탓이다. 지난 4월 총선 직후 만난 그에게 정치적 진로에 대해 물었을 때도 돌아온 답변은 “스스로 발목잡는 발언을 왜 하느냐”였다. 그 신중함은 때로 ‘의뭉스러움’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당대표 시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당내 현안과 관련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는 토론에 부친 뒤 묵묵히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론에 지친 이해당사자들이 ‘그저 결정만 내려달라’며 두 손을 들 때쯤 슬그머니 자신의 뜻을 꺼내 관철시켰다. 반발도 크지 않았다. 일각에선 ‘뭉개기 리더십’이라 비판했지만, 정세균 스스로는 이런 처신을 두고 “지혜로움”이라고 했다.
정세균의 정치 이력은 화려하다. 쌍용그룹 상무를 지내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뒤 집권 열린우리당에서 원내대표와 두 번의 당의장(대표),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9년 다시 통합민주당 대표에 선출돼 당대표 경력만 도합 3번이다. 당내 비판자들은 ‘직업이 당대표’라 비꼬기도 했지만, 당대표 정세균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원내 89석의 통합민주당을 이끌며 연이은 재보궐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정국을 주도했다.
이런 성공에도 정치인 정세균에겐 “합리적이고 안정감 있지만, 대중을 열광시키고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부족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조직의 지도자로는 탁월하지만, 대중적 지도자로 뜨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실제 그는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 한자릿수 지지율로 4위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다. “당대표만 잘한 게 아니라, 장관, 원내대표, 월급쟁이도 다 잘했다”고 자평하는 그였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정치인 정세균에게 너무도 멀리 있는 목표였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선주자인 오세훈 후보를 꺾고 당선된 뒤 그에게는 당대표와 국회의장, 대선 도전이라는 3개의 정치적 선택지가 주어졌다. 그의 최종 선택은 국회의장이었고, 9일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에 선출되면서 그 목표를 이뤘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정치인이 갈 수 있는 ‘좋은 자리’는 다 경험하게 된 셈이다.
그가 당내 경선에서 유력 경쟁자인 문희상 의원을 꺾고 국회의장 후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57명에 이르는 당내 초선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가 결정적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점잖고 잘생긴 신사 이미지에,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이 조정자·중재자라는 국회의장의 역할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회의장 정세균의 당선일성도 “부여된 권한을 적극 행사하되 책임도 함께 지는 협치의 모델을 정립해나가겠다”였다. 바람 잘 날 없던 제1야당을 이끌며 당대표 정세균이 보여준 조정과 관리능력은 7년의 세월과 함께 얼마나 진화했을까.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