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번재판소장(가운데)과 재판관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통합진보당 해산 재심청구 사건의 선고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헌법재판소가 26일 ‘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애초 이 법을 개정하려 했던 여당과 사수를 원했던 야당이 복잡미묘한 상황에 놓였다.
국회선진화법은 18대 국회 말 ‘폭력국회’를 극복하고자 새누리당이 발의하고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이 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막기 위해 여야가 타협하지 않으면 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됐다. 이 법이 시행된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된 새누리당은 “소수 야당이 반대하기만 하면 법안 통과가 안 돼 국정이 마비된다”며 스스로 만든 법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할 수 있는 요건을 넓히는 등의 개정안도 냈다. 야당은 “직권상정 허용을 늘리면 타협 정치가 실종된다”며 반대해왔다.
그러나 20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국면이 바뀌면서 여야의 사정이 달라졌다. 국회의장이 야당으로 넘어갈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에 오히려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소야대가 된 이상 다시 개정하자고 할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그동안 국회선진화법을 ‘국회마비법’, ‘망국법’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던 터라 이런 속내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날 논평을 내어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국회선진화법으로 법안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국회선진화법 개선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안건 신속처리를 하려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한 가중 과반수 조항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다.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티에프를 만들어 논의하고 야당과도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헌재 결정에 대해 “당연한 귀결”이라며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선진화법은 여야가 타협과 합의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만든 법이다. 헌재의 결정은 이 같은 입법 취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도 “여야가 합의로 통과시킨 법률이 시행 과정에서 당의 이해와 부합하지 않는다 해서 외부 기관인 헌재로 가져가는 것은 입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격하시키는 것이었다. 국민의당은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이 되었다 해서 선진화법에 대한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권은 내심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려주길 기다린 측면도 있다. 4·13 총선을 통해 여야간 ‘공수’가 뒤바뀐 상황에서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도입한 ‘5분의 3 가중 과반수’ 조항이 오히려 야당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솔직히 헌재가 선진화법 개정에 손들어주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특히 세법을 예산부수법안으로 묶어 예산안과 함께 자동상정되도록 한 조항은 앞으로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역시 법 개정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용호 원내대변인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면 국회가 여야간 신중한 논의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경미 이세영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