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승패 기준선’으로 내세웠던 100석을 훌쩍 넘기면서 의석수 면에서 새누리당과 큰 차이가 없는 ‘원내 2당’이 됐다. 수도권에선 압승하고, 영남에서도 선전했다. 하지만 텃밭인 호남에서의 참패는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가 선전한 가장 큰 요인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1여다야’의 불리한 구도를 딛고 새누리당을 압도했다는 점이 꼽힌다. 다수의 현역 의원을 보유한 제1야당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공인받은 셈이다. 더민주의 수도권 승리는 야권 지지층에 ‘전략투표’를 호소한 막판 전략이 주효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역구는 경쟁력 있는 더민주 후보에 몰아주고, 정당투표는 각자 지지하는 정당에 나눠주는 ‘교차투표’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를 국민의당 후보들이 잠식한 것도 더민주의 수도권 압승을 도왔다는 분석도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충청권에서 선전하고 ‘불모지’였던 대구와 부산·경남에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은 의미있는 성과다. 국민의당이 갖지 못한 지역구에서의 전국 경쟁력을 더민주가 갖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다만 호남에서 보인 한계가 문제다. 더민주는 28석이 걸린 광주·전북·전남에서 목표했던 두 자릿수 의석에 훨씬 못 미치는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텃밭 사수를 위해 선거운동 기간 막판 전·현직 지도부가 총출동해 민심을 돌이키려 했지만 예상보다 큰 차이의 패배를 당한 것이다. 더민주로선 대선 국면이 본격화할 내년 초까지 텃밭인 호남을 어떻게 재건하느냐가 발등의 불이다. 이번 호남 선거에서 확인된 것은 ‘지금의 더민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현지 민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민주는 이번 호남 참패로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본격화될 야권 내부의 주도권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졌다. 호남의 이탈은 지금까지 제1야당을 떠받쳐온 양대 축 가운데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당투표 득표율에서 국민의당에 뒤진 것도 더민주엔 ‘수모’에 가깝다. 철저한 ‘승자독식’ 구도로 치러지는 지역구 선거의 맹점을 고려하면,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 득표율이야말로 ‘전국정당’ 여부를 가리는 바로미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마련된 ‘2야 병립 구도’는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큰 흔들림 없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독자 생존 기반을 마련한 이상, ‘당대당 통합’ 수준의 야권 재편 논의는 당분간 부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월을 전후해 치러질 더민주 전당대회도 야권의 이후 진로를 결정하는 데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남 재건’이 목표인 더민주 입장에선 호남의 비토를 극복할 새 지도부가 등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화합형 지도부’의 등장 가능성과 함께 김부겸·송영길·박영선 등 차기 당권주자군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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