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전체 유권자 가운데 17%가량만 이른바 토박이다. 자연히 지역색이 옅어, 어느 정당도 ‘텃밭’이라 자신있게 주장하지 못한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계열 정당이나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고 번갈아가며 표를 줬다. ‘대전은 연달아 재선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새누리 이재선 “4선 되면
예산 편성에 큰 영향력”
더민주 박범계 “사내 유보금
720조 풀어야 경기 살아나”
국민의당 이동규 “내 공약은
지역현안 아니라 남북통일”
정의당 김윤기 “청년 일자리 확대
국회의원 세비 절반 삭감”
‘대전의 강남’으로 불리며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곳으로 꼽히는 대전 서을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대전청사와 대전시청, 법조단지 등이 위치해 있고, 고소득층이 집중 거주하지만 선거구가 생긴 1996년 이후 보수 성향의 지역 정당이었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계열과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의 후보를 번갈아가며 선택했다. 15·16대 총선은 자민련, 17대는 열린우리당, 18대는 자유선진당, 19대는 민주통합당 후보가 당선됐다.
“18대 때 도시전철 2호선 예산을 받아오느라 죽을 똥을 쌌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의 권선택 대전시장이 되니까 트램(지상열차)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그럼 차가 막혀서 살 수가 없습니다.” 흐드러진 벚꽃 흩날리던 지난 8일 오전. 이재선 새누리당 후보는 대전시청 앞 사거리에 세운 유세차에 올라 자신의 18대 때 업적과 야당의 ‘발목 잡기’를 대비시켰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낸 유민봉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가 지원유세를 나와 거들었다. “4선이면 국회 상임위원장을 하게 됩니다. 그럼 예산 편성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대전 출신 이재선 후보는 자민련 소속으로 출마해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7대엔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보수가 분열된 상황에서 구논회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18대 총선에선 다시 자유선진당(전 자민련)으로 돌아와 한나라당, 친박연대 후보까지 나온 보수 분열 상황에서 의석을 되찾았다. 하지만 19대에선 새누리당에서 나온 최연혜 후보(이후 철도공사사장 역임,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5번)와 단일화가 되지 않아 박범계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자리를 내줬다. 20대 총선에서 다시 금배지 탈환을 위해 나섰다.
탄방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만난 목사 주아무개(72)씨는 “사사건건 여당 발목을 잡는 야당을 심판한다는 마음으로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박근혜 정부가 일하려면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대전시청을 향하던 김아무개(80)씨는 이 후보의 유세를 보고 “3선 할 때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했는데 올바른 소리를 잘 못하더라고. 사람이 별로라 다른 사람이 나왔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당을 보고 1번을 찍는 거지”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범계입니다!” 같은 날 오후,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서구 둔산동 청솔아파트 앞에서 박범계 더민주 후보는 자신의 독특한 이름을 앞세워 주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차를 운전하고 가던 지지자가 창문을 열고 “화이팅”이라고 외치자 박 후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 후보는 유세차에 올라 “요즘 다들 지갑이 얇아져 소비가 줄고 있습니다. 돈이 풀려야 경기가 살아납니다. 우리나라 30대 대기업이 가진 사내유보금 720조를 푸는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라고 외쳤다.
충북 영동 출신의 박범계 더민주 후보는 2002년 제16대 대선 직전 대전지법 판사 법복을 벗고 당시 지지율 하락으로 후보단일화 압박을 받던 노무현 후보(새천년민주당)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지내며 검찰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하지만 이재선 후보에게 패했고, 민주통합당 소속의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19대 총선에서 이 의원에게 설욕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이번 20대 총선은 현역의원으로서 방어전이다. 국민의당 후보와 야권 단일화가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박 후보는 “12년간 공들여온 지역구다. 이길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사전투표소가 꾸려진 탄방동 한양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만난 박아무개(38)씨는 “청년들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분노를 넘어 조소하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하던 청년들도 이제는 문제를 체감하고 투표장으로 향하고 있다”면서 “더민주가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탈바꿈하려고 노력했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박범계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대전 중구 으능정이 문화의거리에서 열린 대전지역 후보 합동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번 선거는 싸움만 하는 1·2번을 그대로 두실지, 일 잘하는 국민의당 후보를 찍을지 결정하는 선거입니다. 이동규 후보는 지역사회에 공헌해왔고 누구보다 경청하는 좋은 후보입니다.” 경북 구미 출신의 이동규 후보는 대전에서 15년간 가장 큰 피부과·성형외과 병원을 운영해왔다. 정치 신인인 그는 야권 단일화를 거부하며 완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후보는 “더민주는 양당 대결구도를 토대로 자기 밥그릇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 있는 정당일 뿐이다. 난 여도 야도 아니다”라며 “구국의 마음으로 나왔다. 내 공약은 사탕발림 지역현안이 아니라 남북통일”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새누리당 표도 일정 부분 흡수하는 듯했다. 대전시청 앞에서 만난 이명자(70)씨는 “1번이 자기가 1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긴장할 수 있게 견제를 해야 한다. 이번엔 3번을 뽑을 거다”라고 말했다. 둔산동 청솔아파트 앞에서 만난 손아무개(62)씨는 “이전엔 새누리당 찍었는데 1·2번이 하도 싸워서 3번을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윤기 정의당 후보는 대전 지역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오래 해온 활동가다. 지난 17대 총선과 보궐선거, 19대 총선에서 서을 지역구에 출마했고, 2010년엔 대전시장 선거에도 나오는 등 모두 4차례의 선거에 나섰다. 공약으로 국회의원 세비 절반 삭감, 국공립 어린이집 대폭 확대, 청년 일자리 확대, 대기업 사내유보금 초과분 과세 등을 내세우고 있다.
공표금지 전 여론조사 결과는 어느 쪽 손을 완전히 들어주지 않은 채 오차범위 안에서 출렁였다. 중앙일보와 엠브레인의 6일 여론조사에선 박범계 후보(34.7%)가 이재선 후보(32.4%)를 2.3%포인트 앞서갔다. 이동규 국민의당 후보는 9.3%, 김윤기 정의당 후보는 2.9%였다. 반대로 같은 날 굿모닝충청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선 이재선 후보(38.5%)가 박범계 후보(34.3%)를 4.2%포인트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