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5시께 대구 수성구 고산3동 에이스볼링센터 앞 건널목에서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가 시민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장아찌 진짜 안 짜요.”
4·13 총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5시, 대구 수성구 고산1동 신매시장에서 반찬을 파는 상인이 이렇게 외쳤다. “장아찌 안 짜면 먼 맛으로 먹는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지나가다가 웃으며 상인에게 물었다. 김 전 의원은 선거명함 대신 상인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공장(더민주)이 나쁘다고 욕하셨지만 이번이 세 판째 아닌교, 좀 도와주시오.” 김 전 의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4시께 대구 수성구 고산1동 신매시장에서 김부겸 더민주 후보가 시민과 악수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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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매시장을 한 바퀴 돈 김 전 의원은 시장 입구에서 선거유세차량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매일 갈수록 손님이 줄어들고 우리 아들은 마 대구를 떠나고 있십니다. 20년 동안 같은 당만 찍어가 대구에 무신 변화가 있고 희망이 있었십니까? 대구에서 야당이 당선될 수 없다는 야그는 고만 들어야 안 되겠십니까?”
전학수(83·고산3동)씨는 “나는 자유당 때부터 여당 뽑은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당은 안 보고 인물을 보고 뽑아야겠다. 김부겸이가 세 번이나 나와가 불쌍하게 저카고 있는데 이번에는 (국회에)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누리 김문수 “홧김에 야당 뽑으면
쫄딱 망할 수가 있십니다”
‘대구경제 살리겠습니다’ 명함도
더민주 김부겸 ‘대구 변화’ 역설
“대구서 야당은 당선 안된다는 얘기는
고만 들어야 안되겠십니까?”
20년 야당 의원 ‘불모지대’
노동자 월급 ‘꼴찌권’ 등 경기침체 변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비슷한 시간 신매시장에서 300m 떨어진 고산3동 시지에이스볼링센터 앞 건널목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선거운동차량에 올라 “대구 수성갑에 야당 뽑아주면 새누리당은 문 닫는 겁니다. 홧김에 야당 뽑았다가 쫄딱 망할 수가 있십니다. 야당이 지역을 발전시키겠습니까, 경제를 발전시키겠습니까? 냉정하게 생각해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건널목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김 전 지사는 재빨리 선거유세차량에서 뛰어내려갔다. “김문수를 선택해주십시오.” 건널목을 건너온 사람들에게 선거명함을 건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빨간색 선거명함에는 ‘대구경제 살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박태만(65·만촌2동)씨는 “김부겸이가 그렇게 싫지는 않지만 민주당 가들이 싫다. 대통령 임기도 얼마 안 남았구마, 그래도 대구에서는 1번을 뽑아줘야 안 되겠나. 김문수가 국회의원도 세 번 했고 경기도지사도 두 번 했는데 그래도 인물 아닌교”라고 말했다.
김부겸 전 의원이 대구에서 삼수를 하며 표밭을 일궈왔고, 동정표까지 얻고 있다는 점은 큰 강점이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수성구갑에 출마했지만, 이한구 의원에게 패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으로 나와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하지만 당시 수성구갑만 놓고 보면 김 전 의원(50.1%)은 권영진 후보(46.7%)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선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이 대구를 뒤흔든 것이 김문수 전 지사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김 전 지사는 ‘비박’으로 분류되지만, 이 지역구를 물려준 사람은 바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던 이한구 의원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대구·경북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14%포인트나 급락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김 전 의원이 김 전 지사를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대구의 오랜 경제 침체로 ‘새누리당 심판론’이란 구호도 먹혀들고 있다. 대구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23년 동안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 4월 지역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 노동자의 평균 월 임금총액은 267만원으로 전국에서 제주도를 제외하고 가장 낮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에서 1998~2012년 네 번이나 국회의원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에만 20대 청년 6100명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났다. 20년 동안 새누리당에 몰표를 줘도 크게 바뀌는 것이 없었던 대구의 이런 현실은 ‘1번’을 달고 있는 김 전 지사에게 부담이다. 상대적으로 고학력·고소득층이 많은 수성구는 대구의 다른 지역보다 야당 표가 특별히 많지는 않지만 여론의 변화가 빠르다.
그러나 20년 동안 단단하게 굳어버린 대구의 정치 지형은 김문수 전 지사에게 유리하다. 보수의 아성인 대구 유권자들이 새누리당 후보를 비판하다가도 막상 투표장에선 새누리당 후보를 찍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박철언 자민련 후보가 당선된 뒤 20년 동안 대구에서는 야당 국회의원이 나온 적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같은 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당선된 적은 아예 없었다. 2012년 12월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에서 80.14%의 지지를 받았다. 김 전 의원 이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후보로 수성구갑에 세 번이나 출마했던 이연재 후보는 3.3~19.0%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이번 두 후보의 대결은 5%포인트 범위 안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이 크다.
정책보단 정당·인물이 중요한 선거구이기 때문에 공약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두 사람 다 공들여 정책을 내놨다. 김 전 지사는 ‘고산·시지 도시철도 3호선 연장’ ‘고산·시지 수영장 건설’ 등을 내세우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삼성 라이온즈파크 주변 스포츠 테마파크 조성’ ‘대구 스타디움~대구 스포츠 테마파크 친환경 관광 트램(도로에 설치된 레일을 달리는 노면전차) 건설’ 등을 내걸었다.
두 후보는 비슷한 점이 많다. 김문수는 경북 영천에서, 김부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 모두 대구 경북고를 나왔고, 김문수가 5년 선배다. 또 김문수는 서울대 경영학과 70학번, 김부겸은 서울대 정치학과 76학번이다. 둘 다 시국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운동권 출신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인연 깊은 두 사람의 정치적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긴 사람은 대권을 바라볼 수 있지만, 진 사람은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진다. 64살과 58살. 낙선 뒤 다시 대선 후보로 재기를 노리기에는 둘 다 적지 않은 나이다.
대구/김일우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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