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총선 선거구 획정 협상이 31일에도 무산되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심사기간 지정을 통한 ‘직권상정’ 수순에 돌입했다. 여당은 “노동 5법 등을 함께 직권상정하지 않으면 선거구획정 처리도 없다”며 맞섰다. 사실상 ‘대통령 관심 법안’ 처리를 선거구획정과 연계시킨다는 구상인 셈이다.
선거구 무효화를 하루 앞둔 이날 국회는 본회의에서 212개 법안을 처리하는 도중에도 정의화 의장과 여야 중진·당대표 연쇄회동, 긴급 의원총회,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의 잇단 기자회견으로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갔다. 정 의장이 이날 자정을 기점으로 농어촌 지역구 대폭 감소를 불러올 ‘지역구 246석안’을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제시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오후 2시 국회의장실에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 등 4선 이상 여야 중진의원 10명이 정 의장과 회동했다. 정 의장은 선거구 무효화에 따른 ‘입법 비상사태’를 거론하며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기존 지역구 246개 틀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기준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여야 대표에게 (한발씩 물러서는 지혜를) 전해달라”며 협조를 구했다.
선거구 무효화를 7시간여 앞둔 오후 4시30분께, 이번에는 김무성·문재인 여야 대표가 의장실에서 정 의장과 무릎을 맞댔다. 1시간여 회동은 끝내 성과 없이 끝났다. 김 대표는 “정 의장이 각 당에 가서 상의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했고, 문 대표는 “합의를 도모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합의가 안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절차 얘기만 나눴다”고 했다. 애초 선거구 합의는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오후 6시 국회 본회의를 중단하고 여야가 의원총회 등을 열었지만 ‘극적 타결’같은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총을 잇달아 연 새누리당 지도부는 “‘선민생 후선거구’라는 자세로 오는 8일에도 노동 5개 법안 등의 처리 없이는 선거구 처리도 없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했다. ‘대통령 관심 법안’ 처리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선거구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의원들은 돌아가며 기자회견장인 정론관 마이크를 잡았다. 오전에는 경북지역 의원들이 정 의장에게 공직선거법이 금지한 ‘자치구·시·군 분할’을 허용해 농어촌 지역 대표성 훼손을 막아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공직선거법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의 자치구나 시, 군을 인위적으로 쪼개 다른 지역구에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분할 금지 원칙’을 뒀다. 특정인에게 유리한 자의적 선거구획정(게리맨더링)을 막기 위한 조처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인구하한 기준을 넘지 못하는 지역구들은 다른 지역구에 통합될 운명이다. 경북은 246석안을 기준으로 하면 기존 15석에서 4석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경북지역 의원들은 “분할 금지 원칙에 집착해 통폐합 방식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면 오히려 인구비례 원칙을 훼손하고 선거권의 평등을 침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오후에는 경남지역 의원들이 나섰다. 이들은 “19대 총선에서 16석으로 줄었는데 20대 총선에서도 1석이 줄어들 전망”이라며 “부산은 인구 356만명에 18석, 경북은 270만명에 15석인데 경남은 343만명에 15석으로 줄어들 판이다. 이는 인구수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라는 헌재 결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지역구 246개’, ‘최대 4개 자치구·시·군까지만 통합’ 등의 기준을 선거구획정위에 전달한다”고 했다. 선거구획정위가 5일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새로 만든 선거구구역표를 보내면, 정 의장은 곧바로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8일을 공직선거법 개정안 심사기일로 지정해 직권상정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농어촌 지역구 의원 등이 반발해 8일 본회의에서 법안이 부결되면 국회는 새로운 안을 마련해 또 다시 획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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