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메르스 땐 낱낱이 공개
국정교과서 추진 예산을 예비비로 충당한 게 뒤늦게 드러나 ‘편법 편성’ 비판을 받고 있는 정부가 “전례가 없다”며 그 세부내역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등 올해 책정된 다른 예비비는 이미 지출 내용이 공개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기획재정부 누리집을 보면 정부는 지난 6월16일 국무회의를 열어 메르스 관련 예비비 505억원의 지출안을 심의·의결한 뒤 “메르스 조기 종식을 위한 총력 대응 차원”이라는 설명과 함께 관련 내용을 당일 공개했다. 보도자료를 보면 △마스크, 보호구 구입·배포에 150억원 △이동식 음압장비, 음압텐트 구입에 27억원 △의사·간호사 등 파견에 22억원 △의심·확진환자 본인부담금으로 14억원 등 예비비가 지출된다고 설명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4일 건국대병원·강동경희대병원·건양대병원·을지대병원에 15억원 등 총 160억원의 예비비를 메르스 감염병관리기관 지정 병원에 지급한다며 병원 목록과 금액을 자세히 밝히기도 했다.
지난 8월4일 역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대한 예비비 89억원의 지급 내역도 당일 바로 공개됐다. 정부기구인 특조위는 누리집에 △별정직 공무원 보수 등 18억9800만원 △프린터, 가전제품 등 구입 10억2600만원 △임대 보증금 8억9300만원 △피해자 실태 기초조사 비용 3억6200만원 △외국어 자료 번역 2000만원 등 구체적인 지출 명세서를 올려놨다.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 정부가 예산을 사용한 뒤 국회에 사후 보고할 수 있는 예산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정교과서 관련 예비비를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하고도 사실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은 이를 모른 채 6일 뒤인 지난 19일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강행에 반대해 내년도 관련 예산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맞선 바 있다. 이후 뒤늦게 예비비 의결 사실을 알게 된 야당은 관련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거부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은 국회에 출석해 “역대 어느 정부도 예비비 내역을 집행 전에 공개한 전례가 없다”며 공개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책정받은 예비비 44억원 가운데 17억원을 국사편찬위원회에 지급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27억원은 최근 뒤늦게 존재가 드러나 논란이 된 비공개 티에프(TF) 운영비와 홍보비 등으로 사용했다면서도 세부 자료는 제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티에프는 지난 5일부터 가동됐다고 밝혀, 편법 편성된 예비비를 미리 당겨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메르스 등 홍보할 내역은 국무회의 심의 당일 발표한 정부가 국정교과서 예비비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예비비 사용 내역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이날 현행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검증하고 검인정제도 발전 방안을 검토할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했으나, 새누리당은 즉각 거절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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