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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내가 하면 ‘예술’ 날 다루면 ‘인격모독’”?

등록 2005-01-28 13:35수정 2005-01-28 13:35

[현장] ‘환생경제’공연장에서 생각해본 ‘그때그사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인격모독’이고, 극단 여의도의 <환생경제>는 ‘정치풍자’인가?”

한나라당의 ‘예술’을 바라보는 이중적 잣대가 도마에 올랐다. 2월4일 개봉하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박정희 신드롬’을 잠재우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죽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영화”라고 폄하한 반면 최근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환생경제>와 지난해 8월 상영된 극단 여의도의 연극 <환생경제>에 대해서는 “정곡을 찌르는 신랄한 대사가 인상깊은 풍자극”이라며 추켜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23일 대학로 열린극장을 찾았다. ‘정치풍자’ 논란이 일었던 <환생경제>(극단 그리고·연출 이대영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라는 연극을 직접 보고, 예술작품에서 풍자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연극의 배역과 대사는 극단 여의도의 <환생경제>와 별 차이가 없었다. ‘노가리’와 ‘그네’가 등장하고, ‘불×값도 못하는 놈’ 등 원색적인 욕설과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등의 대사가 똑같이 나온다.


“아주 싸가지 없게, 순간적으로 말을 잘 바꾸고 즉흥적이고 화려려 수사와 언변이 뛰어난” ‘노가리’가 ‘남북통일을 위한 한민족 상호간 증오심 거두기 운동본부 산하 웃음되찾기 연구소 부설 민족민주개그위원회’ 위원장을 제안받는 설정도 원작과 같다. 다만, ‘수도이전’ 논란이 잠잠해져서인지, 초점은 ‘경제’쪽에 맞춰졌다. 경제의 죽음과 경제의 환생.

이 과정에는 ‘노가리’와 ‘그네’의 화해와 협력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풍자’로 봐줄 만하다”였다. 기자가 느끼기에도 ‘정치풍자극’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연출자 이대영 교수도 “연극을 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노 대통령을 인신공격한 연극이라고 욕도 많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연극을 봐줬으면 한다”며 “‘풍자’도 예술의 한 분야이며,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이 이 연극을 보고 정쟁을 멈추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 “<그때 그 사람들>은 약한 야당을 짓밟으며 권력에 아부”

지난 24일 <그때 그 사람들> 시사회에 참석한 이계진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kjl533.do)에 올린 글에서 “나락에 떨어진 힘겨워하는 견제 ‘야당’을, 즉 ‘약자’를 힘껏 짓밟으며 ‘강자’인 집권세력에 아부하고 세확산에 힘쓰는지 모르겠다”며 “정말로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라고 제작사를 꼬집었다.

이 의원은 “‘영화’는 아직도 ‘언론’의 범주로, 표현의 자유를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그 자유를 어느 한쪽, 그것도 약자 죽이기에 쓴다면 그것은 ‘자유’를 앞세운 슬프고도 잔인한 방종이 아닐까 한다”고 비난했다. 이 의원은 또 “만약 여러분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영화화해서 만인 앞에 상영하며 같이 감상하자면 여러분은 편한 마음으로 박수치며 볼 수 있겠느냐”며 “역지사지의 넓은 마음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당사자 박근혜 대표는 “만들 때부터 비밀리에 만든 것을 보면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니냐”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유승민 대표비서실장은 “박 대표에 대한 공격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건(박 대표에 대한 공격)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려냈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죽은 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며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왜 <그때 그 사람들> 싫어하나

<그때 그 사람들>에는 김재규라는 실명이 등장하고, ‘다카키 마사오’라는 박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이 나온다. 영화 속 ‘각하’의 입에서는 “엔카를 잘 부르는 애를 불러달라”(궁정동 술자리를 마련하라며), “독하다 맥주 좀 시켜줘라”(술자리에 합석한 대학생에게 약한 술을 주라며) 등의 말이 일본어로 흘러나오며, 10.26 현장에서 가수들이 부른 노래도 주로 일본노래다.

‘각하’의 여자관계를 암시하는 부분도 논란거리. 영화 도입부는 젖가슴을 드러낸 수영복 차림의 여자들이 풀장에서 물장난치는 장면. 초반에는 대통령의 성관계를 암시하며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으며, 연회 시중을 드는 ‘대학생 가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엔카를 듣기도 한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박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일본어를 자주 사용하고 술자리에서 일본가요를 즐겨들으며 사생활이 문란한 우스꽝스런 인물로 그리고 있다며 ‘인격모독’, ‘명예훼손’, ‘박대표에 대한 공격’ 등의 원색적인 말을 써가며 불쾌한 감정을 표시하고 있다.

6개월전 극단 여의도 <환생경제>는?

▲ <환생경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대영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개봉예정인 영화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에 대해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한나라당이 현 정부를 비판한 연극을 ‘표현자유’로 적극 옹호한 전력 때문이다. 6개월전인 지난해 8월 한나라당 의원 24명으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단장 박찬숙 의원)는 연극 <환생경제>를 공연했다.

당시 ‘극단 여의도’는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가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상징하는 ‘그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연극 <환생경제>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연극에서 술만 먹고 빈둥거리는 무능한 가장 ‘노가리’는 둘째아들 ‘경제’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그네’는 노가리를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생계에 힘쓰며, 죽은 아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아내로 표현했다.

이 연극은 특히 ‘노가리’를 “거시기를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불×값도 못하는 놈”으로 묘사하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노 대통령의 단골어투가 등장하는 노골적이고 원색적 표현으로 화제가 됐었다. 때문에 “너무 노골적”, “지나친 희화화”, “연극의 탈을 쓴 언어테러”라는 비판도 쏟아졌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프로를 방불케하는 연기”, “직설적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좋았다”, “비판적 시각과 재치가 돋보였던 풍자극”으로 추켜세웠다. 지난해 12월부터 대학로에서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정치풍자극 <환생경제>가 공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시 “풍자극 내용은 도외시한 채 부분적인 대사 몇 개를 빌미로 연극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은 올바른 문화적 자세가 아니다”라며 비난을 일축했다. 연극에 출연한 의원들 역시 “연극은 연극일뿐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환생경제> 연출자 이대영 교수 “권력은 늘 풍자의 대상, 예술로 바라봐야”

▲ <그때 그사람>의 임상수 감독.
한나라당의 이중잣대에 대해 <환생경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대영 교수도 일침을 놓았다. “권력은 늘 풍자의 대상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는 그는 “<그때 그 사람들>을 직접 보지 못해 작품을 평할 수 없지만,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며, 예술가가 무엇을 하든 존중받아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 “<그때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제작됐든 예술로서 존중해줘야 한다”며 “명예훼손이나 인신공격 등을 덧씌워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를 주지 못한다면,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상수 감독에 대해서도 “<환생경제>와 관련해 ‘명예훼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내가 스스로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졌었다”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면, 공세를 피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상과 소신을 믿고 ‘떳떳하라’”고 주문했다.

<그때 그사람>의 임상수 감독은 지난 2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부시든, 노무현이든 자유롭게 퐁자하고 조롱하고 사는데 박정희라고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네티즌, 한나라당의 이중적 태도 ‘맹비난’

예술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가 표변하는 데 대해 네티즌들은 차갑다. “노무현을 욕하면 ‘예술’, ‘풍자극’이고, 박정희를 욕하면 ‘인격모독’, ‘명예훼손’이냐”는 반응이 많다.

<인터넷한겨레> 한토마 논객 ‘젊은 유월’은 “<그때 그 사람들>은 10.26사건을 소재로 패러디한 것이지 10.26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을 직접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라며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보다 심한 모독이 가능한 마당에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영화적 평가를 가로막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난했다.

논객 ‘프른달’은 “화씨 9.11이란 영화를 보면 부시 대통령은 좀 모자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 가문은 빈 라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던 부도덕한 가문으로 묘사돼 있음에도 그 영화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는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패러디가 판치고 있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든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육××놈ㄴ’ 등 비속어와 욕설이 난무하는 연극을 보고 박수치고 칭찬했던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했다.

한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는 26일 “존경받아 마땅한 고인을 희화하고 폄하한 영화를 만들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법정소송 등 강경대응을 준비하겠다”고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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