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밤 대구 중구 계산성당. 본당 700여석이 사람들로 꽉 찼다. 박수와 환호 속에 등장한 이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성당이 주최한 ‘대구의 미래를 위한 열린 특강’ 강연자로 나서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지난 7월 원내대표에서 찍어내듯 축출된 뒤 숨을 죽여온 유 의원은 이날 강연에서 ‘티케이(TK)발 진정한 보수 개혁’을 강조했다. “제가 요즘 시련을 겪고 있다”는 뼈있는 말을 건넨 그는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스스로 최선을 다해 정치에 참여해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유 의원은 “늘 우리는 대통령을 배출한 것으로 권력을 잡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기득권이라 생각하고 그걸 지키려 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보수화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해왔다”는 원내대표 사퇴 회견문을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강연을 마쳤다.
대구 한복판에서 나온 유 의원의 ‘보수 개혁’ 발언을 두고 본격적인 정치활동 재개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잦은 말바꾸기와 ‘청와대 저자세’에 대한 실망감 속에 유 의원에게 ‘비박근혜계 구심점’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유 의원의 강연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출입기자 10여명이 대구로 내려가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강연에 앞서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한 유 의원은 현안과 관련한 무게있는 언급은 삼가면서도 ‘경선룰’과 관련해 “국민 참여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 등 친박근혜계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의 갈등에 대해선 “제가 좀 까칠하다. 말할 때 덜 굽힌다거나 매너가 좀 부족하거나 거칠 수 있는데, 정말 성공한 대통령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다”며 “대통령께서 외국 나가 계시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