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기 인구 증가·의료개선에 주목
“현대한국 기초 닦았다” 강조
유신체제 긍정성 부각하는 내용도
내년 초등 사회과엔 이미 반영
일제 수탈은 “수출”, 의병학살은 “토벌”
“현대한국 기초 닦았다” 강조
유신체제 긍정성 부각하는 내용도
내년 초등 사회과엔 이미 반영
일제 수탈은 “수출”, 의병학살은 “토벌”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2008년 5월26일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당시 의원)이 했던 축사 중 일부다. 박 대통령은 당시 뉴라이트 교과서를 극찬하며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선진 한국을 만드는 데 저도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12일 교육부가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교과서가 결국 친일·유신체제 미화로 논란이 된 ‘뉴라이트 교과서, 교학서 교과서’의 재판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고, 이승만 대통령 독재체제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미화한 내용이 많았다. “식민지 시기에 인구가 급증하였다”는 표현을 쓰며 일제강점기 공중보건과 의료 개선에 나선 총독부의 역할을 주목하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한 서술이 주를 이룬다.
유신체제의 그늘보다, 성과를 강조하는 데 무게를 둔 것도 눈에 띈다. “5·16 쿠데타는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며 5·16이 경제발전의 디딤돌을 놓았다고 평가했고, 186쪽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개하는 데 전면을 할애하며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2013년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교학사 교과서는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진이 대거 참여해 ‘제2의 뉴라이트 교과서’로 불리며 내용이 더 우편향적이고 서술 오류 등의 결함이 많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정교과서가 ‘제2의 뉴라이트 교과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박 대통령의 교과서에 대한 인식과 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국정교과서 청사진에서 엿볼수 있다. 7년 전 뉴라이트 교과서 출판기념회에서 “우리가 더욱 자랑스럽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이 책이 큰 토대가 될 것”이라고 극찬한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부터 “올바른 국가관” “균형 잡힌 역사의식” 등을 강조하며 국정교과서의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게다가 뉴라이트 교과서는 필진 대부분이 경제·정치학 전공자들로 근·현대사 전공자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날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진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사로 구성되어 있지 못하다”며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교과서는 결국 논란만 일으키고 사라진 뉴라이트·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박 대통령이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런 책은 불량품으로 지목돼 교육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공권력으로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꼬집었다.
도종환 새정치연합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정부여당이) 지난 10여년 동안 뉴라이트·교학서 교과서를 추진했고 좌절했다. 그래서 국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 위원장은 내년부터 사용하는 초등학교 사회과 국정교과서를 예로 들며 “일제 때 수탈을 ‘쌀수출’로, 의병 학살을 ‘대토벌’이라고 기술했다. 또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표현했다”며 “이런 교과서를 만들려는 게 정권의 의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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