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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태풍 피하려 ‘태풍의 눈’ 속 들어갔다 갇힌 문재인

등록 2015-09-11 19:59수정 2015-09-12 01:04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오영식 최고위원의 ‘재신임 투표’ 재고 요청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오영식 최고위원의 ‘재신임 투표’ 재고 요청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재신임 투표 강행 초강수
“폭풍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1일 대다수 최고위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 절차를 강행하기로 한 이유를 묻자, 문 대표의 한 측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과 당원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으면 사퇴하겠다”고 밝혔는데도, 비주류 쪽에서 재신임 방식의 유불리를 따져가며 사실상 ‘무조건적 사퇴’나 다를 바 없는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자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게 문 대표 쪽 입장이다.

문 대표는 이날 전당원 전화자동응답 투표(ARS)와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며 재신임 방식을 새로 내놓았다. 둘 중 어느 한쪽에서라도 불신임을 받으면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게 문 대표의 뜻이다. 또 16일 중앙위원회에서 의결되는 혁신안이 부결돼도 사퇴하겠다고 한 만큼, 전날 당 전략 단위에서 마련했던 재신임 방식(혁신안 부결시 사퇴, 권리당원 투표 50%+국민여론조사 50% 합산)보다 훨씬 재신임을 받기 까다로운 조건을 단 것이다. 문 대표의 측근은 “처음 얘기가 된 재신임 방식이 ‘문 대표에게 유리하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니까,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문 대표가 국민여론조사와 대의원 투표에선 앞섰으나, 권리당원 투표와 일반당원 여론조사 등 당원들에게 낮은 점수를 받았던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참에 당 갈등 매듭 ‘배수진’

당내선 더 큰 분열 위기 우려
정세균 “정치력 발휘해야
천정배 포함 연석회의를”
김부겸 “문재인만으론 안되지만
문 없어도 총선 못이겨” 화합 촉구

11일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방안 관련 당내 주요 발언
11일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방안 관련 당내 주요 발언

오영식·유승희 최고위원 등이 이날 “혁신안 처리를 위한 중앙위 개최와 대표 재신임 투표를 재고해달라”고 요구했음에도, 문 대표가 서둘러 재신임 투표 강행에 나선 것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다급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발빠르게 내년 총선 전략을 마련하며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데,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 내홍이 계속되면서 지도부가 힘을 받지 못해 새정치연합이 대여 투쟁도, 총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름의 절박함이 깔려 있다. 특히 “오는 18일로 예정된 당 창당 60주년 행사를 이처럼 분열된 상태로 맞을 수는 없다”는 게 문 대표 생각이라는 것이 주변 의원, 측근들의 얘기다. 문 대표 쪽에선 힘겹게 마련한 혁신안을 제대로 실천해 총선 승리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이에 발맞춰 재신임을 통해 당 기강을 확실히 세워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문 대표의 측근 의원인 노영민 의원은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문재인이 싫다’가 아니라 ‘당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의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데 불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표의 이런 ‘결단’이 오히려 당을 더 큰 분열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 다수가 반대하는 재신임 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에 위배된다”며 “문 대표의 재신임 투표 결정으로 지금 우리 당은 ‘문재인의,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1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하는 등 비주류 쪽에서 문 대표의 재신임 결정과 방식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재신임 방식 및 일정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재신임 방식 및 일정
이날 저녁,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문희상·원혜영·박병석 의원 등 3선 이상 중진의원 17명이 모여 “재신임 투표 등 당내 문제는 국정감사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뜻을 모은 것은 일단 최악의 위기라는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취지였다.

당 중진들까지 중재에 나서면서 문 대표 쪽에서도 재신임 투표 방식에 합의해준다면 일정은 연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중진들의 요구가 재신임 투표는 물론 공천 혁신안 처리를 위한 중앙위원회 소집까지 연기해달라는 데 이르자, 문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진들의 중재안이 시간만 지연시키는 것일 뿐 비주류 쪽의 요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쪽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신의 생각만 밀어붙인 문 대표는 오늘로 당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만 감당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이제 당은 혁신과 통합의 길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의 길로 치닫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표가 재신임 투표를 밀어붙인다면 재신임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비주류 쪽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 ‘강 대 강’ 대결 국면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정애 이승준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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