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사퇴 회견문을 읽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퇴 회견서 “법과 원칙, 정의” 강조…박 대통령 정면 비판
새누리 4시간 의총, 표결 않고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정
새누리 4시간 의총, 표결 않고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정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의원총회에서 확인된 의원들의 뜻을 수용하는 형식을 통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2월2일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156일,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유승민 거부’를 선언한 지 13일 만이다. 유 원내대표 사퇴로 여권의 분란은 일단 겉으로는 봉합됐으나, 이번 사태로 ‘대통령 거수기’의 민낯을 드러낸 새누리당의 내상과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사퇴를 선언했다. 이날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과 거부권 파동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의원 다수의 뜻을 김무성 대표로부터 전달받고 즉시 수용한 것이다. (▶ 바로가기 : [전문]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회견문)
유 원내대표는 사퇴 회견문에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의원들 손으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일방적으로 끌어내리려 해 반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박 대통령과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빗대 공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며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용서와 이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진영을 넘는 합의의 정치’ 등을 내걸었던 자신의 4월 국회 연설을 언급하며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말했다. 정치 행보에서 박 대통령 및 친박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유 원내대표 거취를 주제로 열린 새누리당 긴급 의원총회는 4시간 가까운 토론 끝에 ‘유 원내대표 사퇴 권고’로 결론을 내렸다. 33명의 의원이 발언대에 섰으나, 공식적으로 유 원내대표 사퇴 자체를 반대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김용태 의원 등 7~8명이 “표결로 결론 내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는 의총 뒤 사퇴 권유를 위해 유 원내대표를 만나고 나온 뒤 “의총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대다수의 의사는 (유 원내대표가) 책임 여부를 떠나 이유를 막론하고 현 상태에선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세여서 의총에서 그런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의총을 시작하면서 “‘선당후사’의 정신”을 강조하며 “유 원내대표에게 당을 위해 희생하는 결단을 부탁한다”고 밝혔고, 의원들 다수가 이에 동의했다.
‘유승민 몰아내기’에 반대해온 정두언 의원은 기자들에게 “비참하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의총 뒤 자료를 내어 “국민 입장에선 집권당으로서의 체모는 물론,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도 무너뜨렸다고 비판할까 두렵다”고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의 총의로 (유 원내대표 사퇴가) 결정된 일인데 청와대에서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며 “당·청 관계에 대해선 앞으로 잘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유 원내대표 사퇴로 당장 당·청 갈등의 ‘급한 불’은 껐지만, 이번에 더 깊어진 박 대통령과 친박근혜계에 대한 당 안팎의 반감이 향후 여권 분란의 ‘불씨’로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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