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 둘째)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맨 왼쪽)이 자신을 향해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 출범 이후 청와대와 당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원내대표 자리는 개인의 자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동안 고개를 젖힌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김무성 대표(오른쪽 둘째)와 서청원 최고위원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 대통령, 국회에 선전포고
친박계는 유승민 향해 십자포화
청-국회, 여-야 대결은 물론
친박-비박 갈등 불거질 가능성
새정치 “국회 일정 협의할 때
국회법 재의결 조건 걸어야” 주장
친박계는 유승민 향해 십자포화
청-국회, 여-야 대결은 물론
친박-비박 갈등 불거질 가능성
새정치 “국회 일정 협의할 때
국회법 재의결 조건 걸어야” 주장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지난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국회법에 대해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면서, 향후 정국이 예측하기 어려운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11명)이 찬성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고 이에 따라 재투표가 진행되면, 청와대나 여야 지도부 어느 한쪽은 치명적인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청와대와 여야 지도부 3자가 각자의 정치적 사활을 건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처지에 내몰린 셈이다.
우선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조기 레임덕이냐, 여당 지도부 불신임이냐’를 놓고 치열한 내부 투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에도,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가결)시키면 박 대통령은 임기 중반기부터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새누리당 의원들의 대거 이탈로 부결되면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로부터 사실상 불신임 선고를 받게 된다. 야당은 법안에 압도적으로 찬성할 수밖에 없어,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해묵은 ‘친박(친박근혜) 대 비박(비박근혜)’ 갈등이 재현되거나, 그 이상 복잡한 형태로 당내 갈등이 번질 수 있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이번 거부권 행사 예고가 사실상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사실상 청와대의 ‘유승민 비토’나 마찬가지다. 또 개정 국회법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이 커지는 등 새누리당 지지층의 여론이 나쁘게 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새누리당 내부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회가 정부 시행령까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고 초강경 대응에 나서고, 같은 날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일제히 유 원내대표에게 십자포화를 쏟아낸 것은 마치 조직적 역할 분담처럼 비치기도 한다. 5월29일 국회법 통과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않던 당 최고위원들마저 이날 유 원내대표 책임론을 거론하며 “청와대를 찾아가 사후 수습 문제를 논의하라”(이인제 최고위원), “여권 내부의 모순과 무능함이 갈등의 본질”(김태호 최고위원)이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대통령과 당의 뜻이 다를 수 없다’며 한발 물러난 것도 청와대와 일종의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그 자체로 여야 관계의 경색을 낳아 향후 국회 운영에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도 “각종 민생법안조차 정치적 사유로 통과가 되지 않아서 경제 살리기가 발목이 잡혀 있다”고 날을 세웠지만, 정작 박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 발언으로 당장 6월 국회부터 정상적인 운영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청와대가 삼권분립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우려스럽다”며 “여야가 통과시킨 법률을 청와대가 무산시키는 사태가 반복되면 6월 국회의 원활한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원내 지도부 안에선 6월 국회 의사 일정을 협의할 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될 경우, 여야가 (대통령 거부권을 무산시킬 수 있도록) 국회법 재의결 절차를 밟는다는 조건을 걸고 일정을 합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청와대가 처리를 요구하는 각종 민생법안 처리와 이를 연계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나아가 새정치연합은 국회의 시행령 수정이 정당한 입법권이라고 주장하며 6월 임시국회에서 정부 시행령 전반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청와대와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야당은 일단 상황을 지켜본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당청 갈등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방안이 결과적으로 청와대를 돕는 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점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춘석 새정치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 국회법과 관련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당이 국회법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정리하기 전까지 대응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당 원내 지도부와 긴밀히 상의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석진환 최혜정 이세영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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