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국회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상옥 대법관 후보 청문회 쟁점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는 사실상의 ‘박종철 청문회’로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1차 검찰 수사를 담당한 박 후보자가 경찰의 고문 가담자 축소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지, 아니면 알고도 덮은 것인지를 규명하는 데 집중될 공산이 크다. 뒤늦게 알았다면 ‘부실 수사’, 알고서 덮은 것이라면 ‘은폐 수사’다. 박 후보자는 1차 수사 당시 서울지검 형사2부에 재직하면서 신창언 부장검사의 지휘를 받아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와 함께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을 직접 조사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6000여쪽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검찰 수사기록의 확보 여부가 중요하다. 검찰이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할 수도 있어, 청문회 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박종철 고문경찰 축소
뒤늦게 알았나, 알고도 덮었나
규명에 초점 맞춰질 듯 박 후보, 1987년 1차 수사 때
‘고문 공범’ 2명 직접 조사하고도
가담 여부 추궁 안하고 마쳐 ■ 박 후보자가 올린 1차 수사 보고서 내용이 핵심
야당은 수사기록 중에서도 특히 박 후보자가 작성해 상부에 올린 수사보고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사건 전모에 대한 박 후보자의 판단과 수사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이기 때문이다. 재판 당시 작성된 증인신문조서도 중요하다. 사후 첨삭을 거쳐 정리한 피의자 조서와 달리 증인신문조서엔 법정에서 증인과 주고받은 문답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14일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찰은 다음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터무니없는 해명을 내놓는다. 경찰은 자체 수사를 벌여 1월19일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강진규·조한경 두 명을 고문 경관으로 지목해 구속한다. 박 후보자는 검찰의 1차 수사팀으로 이 사건을 맡아 조사한 뒤, 2월24일 경찰 발표대로 강진규·조한경만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고문 공범이 더 있고, 경찰 수뇌부를 포함한 지휘라인의 사건 축소·은폐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2차 수사로 이어진다. 박 후보자는 2차 수사팀에도 참여해 자신이 1차 수사 때 참고인으로 조사했던 반금곤·황정웅의 고문 가담 사실을 확인해 추가로 구속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혹이 시작된다.
공개된 공판 조서 등을 보면, 박 후보자는 2차 수사 때 구속되는 반금곤·황정웅을 1차 수사 때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이들의 고문 가담 여부를 추궁하지 않고 이미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확인하는 선에서 조사를 마쳤다. 당시 언론은 공범이 더 있는지, 경찰 상부에서 사건을 축소·은폐한 것은 아닌지에 의혹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박 후보자를 포함한 수사팀은 △고문 경관이 더 있을 가능성 △경찰 상부의 고문 사실 인지 여부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최초 발표 주도 인물 등은 확인조차 않거나 형식적 질문을 던지는 선에서 나흘 만에 수사를 끝냈다.
■ 경찰 상부의 개입 여부는 왜 수사하지 않았나
박 후보자는 사제단의 폭로 뒤 꾸려진 2차 수사팀에 합류하고도 당시 경찰 지휘라인에 있었던 박원택·유정방·박처원 등의 축소·은폐 기도나, 구속된 강진규·조한경에 대한 회유 협박에 대해선 별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검찰은 수사를 서울지검에서 대검 중수부로 이관한 뒤 보강 수사를 벌여 5월27일 박원택·유정방·박처원을 구속하고 수사를 종결한다. 박 후보자가 1차 수사에 이어 2차 수사에서도 진실을 규명하려는 적극적 의지 없이 ‘각본에 따른 수사’에 머물렀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야당은 이런 의혹을 밝히기 위해 고문 경찰관 5명과 경찰 지휘라인은 물론 1·2차 수사팀에 참여했던 당시 검찰 관계자들은 모두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상수·신창언·정구영 등 당시 서울지검 수사팀과 지휘라인이 대상이다. 사건 직후부터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수사팀에 주지시킨 것으로 알려진 최환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도 증인 신청이 유력시된다. 박종철 사망 직후 장세동 안기부장 주도로 소집된 관계기관 대책회의와 실무자 대책회의 참석자들도 소환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서동권 당시 검찰총장, 정형근 당시 안기부 제1차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뒤늦게 알았나, 알고도 덮었나
규명에 초점 맞춰질 듯 박 후보, 1987년 1차 수사 때
‘고문 공범’ 2명 직접 조사하고도
가담 여부 추궁 안하고 마쳐 ■ 박 후보자가 올린 1차 수사 보고서 내용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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