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
“이(교체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첫 번째로 잘 아는 사람은 대통령이고, 두 번째는 저 아니겠습니까. 할 말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누가 물으면 ‘소이부답’으로 답합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새해 맞이 기자단 산행에서 했던 말의 유효기간은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정 총리의 발언은 연말에 교체설이 난무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자신한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그도 곧바로 이어진 신년기자회견 역풍,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 파동’, 그리고 ‘연말정산 파동’까지 새해 벽두부터 이어진 ‘악재’들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 총리는 박근혜 정부 첫 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여론의 집중포화 속에 낙마하면서 발탁된 이후, 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을 거쳐 정부 출범 다음날 첫 총리로 임명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책임총리’는 집권 초 국정 드라이브를 거는 청와대에 밀려, 사실상 실현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정 총리는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실종자 가족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큰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과 경찰이 대치중일 때, 몇시간 동안 승용차에 앉아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항의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생수병을 머리에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사고 11일 만인 4월27일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후임으로 지명한 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하면서, 박 대통령은 두달 뒤 끝내 정 총리의 유임을 발표했다. 예상밖의 유임으로 60일 동안의 ‘시한부’ 처지를 청산한 정 총리는 지난해 말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지는 상황에서 다시 ‘교체설’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정 총리는 연말 총리·부총리 3인 정례협의체를 가동하고,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만나 법안 처리를 의논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소이부답’의 자신감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불거진 연말정산 등 각종 악재 속에서 청와대가 추진한 쇄신 국면까지 돌파하진 못했다. 청와대는 23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그동안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했고, 최근 신년 업무보고가 끝남에 따라 (박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정 총리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정대를 졸업한 뒤 30년간 검사로 활동한 바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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