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전 통일사회당 대표
20일 국회서 20주기 학술심포지엄
그는 온몸으로 시대와 불화했다. 청년 시절, 이범석의 ‘족청계’로 자유당 창당에 참여했지만 이내 숙청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쫓기듯 떠난 일본에서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어 돌아왔으나, 민주적 사회주의를 한국 정치에 이식하려던 그의 실험은 실패만 거듭했다. 김철(1926~94) 전 통일사회당 대표는 ‘너무 일찍 왔다 간’ 사회민주주의자였고, 현실보다 큰 이상 때문에 고통받은 비운의 정치인이었다.
2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후원으로 열리는 ‘당산(堂山) 김철 20주기 학술심포지엄’은 조소앙·여운형·조봉암에서 김철로 이어진 한국 사회민주주의운동의 발자취를 더듬고, 김철의 삶과 사상이 오늘의 한국사회에 던지는 실천적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과 신광영(중앙대)·강수돌(고려대) 교수가 김철의 생애와 정치·경제사상 등을 주제로 발표하고, 이종오 경제사회포럼 이사장과 심지연 경남대 교수, 정범구 전 의원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김철은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에 기반한 대중적 진보정당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 혁신정당 운동을 이끈 1세대 사회민주주의자로 평가받는다.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군사독재 체제 아래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되고,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통해 완성된다”는 신념으로 평화통일·경제민주화·복지국가 등의 진로를 제시했던 선구적 사상가이기도 했다.
65년 그가 창당한 통일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채택했고, 4년 뒤 한국 정당으로는 처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그는 70년 통일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김대중 당시 신민당 후보를 지지하며 중도 사퇴했고, 이후 민주회복국민선언(1974년)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김 전 대통령과 옥살이를 함께 했다.
지난해 9월 서울고법은 ‘긴급조치 9호’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았던 고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가 그의 아들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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