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영선 원내대표의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설’을 접한 뒤 또 한번 발칵 뒤집혔다. 일각에선 박 원내대표가 당 정체성까지 흔들면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의도를 의심하며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이 교수는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쓴소리’를 많이 했다. ‘친노’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합리적 보수’로 분류된다지만, 우리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 건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영선 원내대표의 당선과 비대위원장 추대 당시 핵심 지지세력이었던 당내 초·재선 혁신모임 ‘더 좋은 미래’는 이날 긴급회의를 연 뒤 성명을 내고 “새누리당 비대위원이었던 이상돈 교수를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에 영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지도부는 이 교수의 영입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성명에는 친노, 486, 정세균계, 김근태계에 속한 중진 의원 등 50여명이 가세했다.
새누리 쇄신특위 활동했던 인물
영입반대 성명에 의원 50여명 서명
“당 정체성 논란 불거질 것”
문재인 의원도 우려 전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21일째 단식중인 정청래 의원도 성명을 내고 “박근혜 정권 탄생 주역인 이 교수의 비대위원장 임명을 강행한다면 제가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결사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의원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8·7, 8·19(세월호 특별법 여야 원내대표 1·2차 합의)에 이은 세번째 패착이 될 것”(최민희), “아무리 위급한 수술 중에도 혈액형은 맞춰서 수혈한다”(김광진)고 적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친노’ 그룹 좌장 격인 문재인 상임고문의 한 측근은 “오늘 아침 문 고문이 ‘이상돈 비대위원장은 어떻겠느냐’는 박 원내대표의 전화를 받고 ‘당내 반발이 심하고 정체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란 우려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달 연이은 세월호법 협상 실패로 당내 여론이 악화하자, 겸직하고 있던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놓기로 하고, 이달 초부터 학계·시민사회 명망가들을 상대로 비대위원장 영입을 추진해왔다. 영입 대상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관계자는 “진보·개혁 진영 인사들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의사를 타진했지만, 대부분 복잡한 당내 사정을 들어 고사해 접촉 범위를 (보수 쪽으로) 넓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 교수가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 보여준 강단과 개혁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운데)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생법안관련 정책 간담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러나 당내에선 이 교수의 이력과 정체성뿐 아니라 비대위원장 선임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한길 전 대표 쪽의 한 재선 의원은 “당내 여론수렴 없이 언론에 띄운 뒤 분위기를 살피려는 얄팍한 계산이 읽힌다. 세월호법 협상 실패의 전철을 되밟고 있다”고 꼬집었다. 3선 의원이 주축이 된 혁신모임과 고 김근태 상임고문 계보인 민주평화국민연대 등 또다른 당내 의견그룹도 조만간 이 교수 내정에 따른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내대표가 이날 자신이 겸임한 비대위원장직에 대해 명확한 거취를 표명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이날 간담회 직후 박 원내대표 주변에선 “비대위원장직을 완전히 내려놓을지 아니면 외부 인사와 공동으로 맡게 될지는 당내 여론 등을 보고 최종 결정할 것”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선 내부 사정에 어두운 외부 인사를 들러리로 세우고, 차기 당권과 총선 공천의 변수가 될 지역위원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관측마저 제기됐다. 중도 성향의 한 다선 의원은 “당의 난맥상에 책임을 지겠다면 비대위원장을 그냥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적 야심이 개입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날을 세웠다.
박 원내대표 쪽은 “공동 비대위원장 체제는 이 교수가 당 사정에 어두운 자신에게 당 혁신의 막중한 책임이 집중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박 원내대표에게 제안했다”고 해명했지만 당내 논란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새정치연합의 현행 당헌·당규상 박 원내대표가 이 교수를 비대위원장에 선임해 발표하는 것엔 절차적 문제는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당내 반발이 지속된다면, 독자적인 당내 계보도 없는데다 세월호법 협상에서 이미 두차례 정치적 실기를 경험한 박 원내대표가 이상돈 비대위원장 카드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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