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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편집국에서] 문창극 동영상 시청기 / 권태호

등록 2014-06-15 18:17수정 2014-06-15 21:15

권태호 정치부장
권태호 정치부장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동영상 3개를 모두 봤다. 그는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미국을 추앙하는 것도 ‘기독교’보다 그 ‘파워’에 주목한 것 같다. 강연 첫머리는 늘 “우리 민족은 게으르다”로 시작한다. 근거는 독일, 프랑스, 영국 선교사들이 쓴 책이다. 서구의 눈으로 본 우리다. 당시 어떻게 게으를 수 있었을까? 뼈가 부서져라 일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고살 수 없었을 텐데…. 그가 해명하기도 했지만, 우리 민족이 못살았던 건 양반들의 수탈 때문인데, 동영상에서 강조점은 분명 ‘게으르기 때문에 못살았다’이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일제 식민사관과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세 강연 모두 윤치호와 이승만을 인용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기독교인 중 윤치호와 이승만일까? 둘 다 미국 유학을 갔고, 미국의 힘에 의존한 극단적 친미주의자라는 게 공통점이다.

오랜 기자생활을 한 그가 교회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시절 기자생활 하면서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 아니면 기독교인이 이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왜 전혀 없을까? 그가 어떤 기자생활을 했는지 모르지만, ‘힘’을 숭상하는 그의 이데올로기를 보면 불의한 시대에 시대와 불화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힘’에 순응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치학 박사인 그가 “책임총리가 뭔지 모른다”고 한 것도 동영상을 보니 이해가 조금 된다. 언론이 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하려면 힘있는 자를 비판하고, 약자를 옹호해야 한다. ‘힘’을 숭상하기 시작하면 어용으로 바뀐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길바닥에 내어버린다.

‘게으름’을 질타한 걸 보면, 그는 무척 성실했던 것 같다. 서울대를 갔고, <중앙일보>에서 ‘잘나갔던’ 것도 성실성이 바탕됐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해 물로 배를 채운 적도 많았다 했다. “일 안 하고, 세금 걷어 나라가 해주길 바라는 게 공산주의, 복지병”이라 했다. 양극화 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의 이들에게 ‘하면 된다’며 경쟁으로 내모는 건 폭력에 가깝다. 그가 강연한 교회는 지식인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왜 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대형 교회 신자들의 회개를 촉구하지 않고, 사회 낙오자들의 게으름만 질타했을까? 기득권층(majority) 앞에서 사회적 약자(minority)를 비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동영상 보도가 논란을 일으키자 법적 대응부터 얘기했다. 힘있는 자들의 전형적 방식이다. 평생을 언론인으로 산 그가 언론보도에 글이나 말로 맞서지 않고, 소송에 의존하려 한다. 기자 출신 총리 후보자라면, 설령 언론이 오보를 했다 하더라도 그 방식을 택해선 안 될 것 같다. 논쟁에서 지고 법원에서 이긴다면, 그의 지난 삶은 뭔가?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평생 법조인으로 살았지만, 그리 하지 않았다. 안 후보자는 억울한 게 없었을까?

그는 교회 강연이란 점을 양해해달라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겪었는데, 이제 부강하게 됐다. 이 모든 게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강연 요지라고 한다. 기독교인이 이 정도 역사관을 갖고 있는 걸 비판하긴 힘들다. 그러나 그는 “분단은 공산주의 국가 되지 않도록, 6·25는 미국을 붙들어주기 위해 주신 것이다. 남북협상 한다 해서 통일되지 않는다. 10년 안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을 것”이라 했다. 성경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자의적 해석에, 뚜렷한 근거도 없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한 뒤, 자기확신하는 형태는 기독교 안에서도 ‘이단’이라 칭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논리 전개 방식과 흡사하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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