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인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인도를 오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강남 4구“인물 등 변수에 계급성향 바뀐 듯”
“실제 표로 이어질진 몰라” 분석도
“실제 표로 이어질진 몰라” 분석도
한강이 가른 것은 단지 서울이란 공간의 남과 북이 아니었다. 돌진적 근대화의 시간대를 통과하며, 강은 사람들의 의식 안에 다양한 단층선을 새겨 놓았다. 강은 정치적 구획선이자 문화의 경계선, 그리고 첨예한 계급의 대치선이 됐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강남과 비강남’의 균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강남·서초구의 투표율은 35.4%, 36.2%로 서울시 평균(25.7%)을 압도했다. 강남의 ‘계급 투표’였다.
3년이 지난 지금, 강남에 변화의 바람이 느껴지는 조사가 잇따라 나온다. <한국경제>가 5월27~28일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표본 1000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서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의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지지율은 51.5%였다. <서울신문>-에이스리서치의 25~26일 같은 조사에서도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 41.3%, 박원순 새정치연합 후보 41.1%로 팽팽했다. <매일경제>-메트릭스코퍼레이션(23~25일 조사) 조사에선 정몽준 42.2%, 박원순 42.7%, <시비에스>(CBS)-포커스컴퍼니(24~26일) 조사에선 정몽준 34.0%, 박원순 34.0%였다. 여론조사만 보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남은 새누리당이 강북에서 잃은 표를 벌충하는 텃밭이 아니라, 여야가 초접전 양상을 빚는 격전장이다.
예상 밖 선전에 야당도 반신반의한다. 박원순 캠프의 권오중 상황실장은 “임대아파트와 원룸촌이 늘고 젊은 학부모들이 이주해 오면서 인구 구성이 변한 것이 작용한 것 같다”면서도 “여론조사가 실제 개표 결과로 이어질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지역 유권자들 반응은 복잡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부 이아무개(48)씨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에 생활협동조합 회원이 된 뒤 야당 지지자가 됐다”며 “시장은 당연히 박원순”이라고 했다. 삼성동에 사는 김아무개(42·개인사업)씨는 “정몽준이 별로지만, 박원순을 찍게 될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정치에 관심 없는 생활형 보수”라고 했다. 청담동에 사는 주부 강아무개(38)씨는 세월호 참사 뒤 새누리당 지지에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무능하고 책임만 떠넘기는 대통령과 정부를 보고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강남의 계급투표를 지탱해온 핵심 지지층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다. 도곡2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주부 박아무개(47)씨는 “단체 카톡방에 박원순이 대기업에서 거액을 기부받은 사실, 부인 회사에 특혜를 줬다는 얘기 등이 꾸준히 올라온다. 반면 정몽준은 실수도 많이 해 어눌한 재벌 2세 이미지가 강했는데, 텔레비전 토론을 본 뒤 괜찮다는 평가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같은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기업 컨설턴트 박아무개(47)씨는 “박원순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박원순이) 표리부동한 인물이란 느낌이 들어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강남 여론의 최근 흐름을 “유권자의 계급투표 성향을 세월호 변수와 인물 변수가 상쇄하는 상황”이라고 요약했다. 박원순 후보의 ‘합리적 진보주의자’ 이미지가 야당 후보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반면, 정몽준 후보의 ‘재벌 2세’ 이미지는 스스로 노력해 성공을 일궈냈다고 자부하는 강남의 고학력 화이트칼라들에게 호감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고 김 교수는 진단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쿨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계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김아무개(42)씨는 “예전 같으면 별 고민 없이 새누리당을 찍을 텐데, 이번은 좀 다르다”면서도 “하지만 누가 시장이 되든 단기간에 뭔가 바뀌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대치동 커피숍에서 만난 30대 직장인도 “누가 뽑히든 마찬가지다. 투표 참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대해 강남에 사는 한 소장 사회학자는 다른 진단을 내렸다. “강남 유권자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자신의 보수적 선택을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코스프레’에 가깝다. 왜 유독 강남에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투표율은 타 지역보다 월등히 높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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