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사회 에디터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결정적 계기는 이른바 삿초동맹의 성립이었다. 도쿠가와 막부에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두 번이었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 동맹을 맺음으로써 막부가 무너졌다. 이후 두 번은 메이지 국가에서 총리를 번갈아 맡으며 근대화의 길을 닦았다.
두 번이 이끈 메이지 국가의 발전상은 눈부시다. 1890년 첫 총선을 치름으로써 일본은 대의정치에 성공한 최초의 비대서양권 국가가 됐다. 메이지 초기 지도자의 절반이 합류할 정도로 파격적으로 구성된 이와쿠라 사절단은 2년에 걸쳐 서구를 순방하며 근대화 정책을 속속들이 탐색했다. 일본사 권위자 마리우스 B. 잰슨은 <현대 일본을 찾아서>에서 “일본인이 자부심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썼다.
일본이 근대화를 이룬 동력은 서구 열강의 위협 앞에서 내부 힘을 모으는 연합정치에 성공한 것이었다. 사쓰마와 조슈 두 번은 끝없이 경쟁했지만 위기 앞에서 힘을 합쳤다. 메이지 초기 지도자들 상당수가 나중에 정한론으로 기울거나 군국주의의 뿌리가 되지만, 이들의 성취를 폄하할 수만은 없다.
어느 나라건 역사에서 한 단계 도약한 때는 분열을 극복하는 대연합의 계기가 있었다. 1966년 옛 서독의 대연정도 그렇다. 기민당과 사민당이 전후 최초로 연정을 구성함으로써 서독은 정치 안정을 이루고 도약할 수 있었다.
근래 우리 정치에서 대척점에 선 정치세력 간 연합을 모색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이 유일하다. 노무현의 대연정은 아무도 제대로 준비가 안 된 탓에 대재앙으로 끝났다. 노무현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받아주면 총리와 내각을 내주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지만 지지자를 설득할 방안도, 상대를 끌어들일 묘수도 없었다.
노무현이 비록 실패했지만 대연정의 문제의식은 지금 더욱 유효하다. 나라가 지금처럼 도약이냐 퇴행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인 때도 없었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거리고 있고, 외교적으로 대북정책과 4강 외교의 유동성이 매우 커졌다. 우리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굳이 노무현식 대연정이 아니더라도 정치세력들이 몇몇 국가적 과제를 놓고 대타협을 이룸으로써 정치가 나라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그랬듯 지금이야말로 우리도 힘을 모을 때다.
정치세력 간 실질적 합의나 제휴가 이뤄지려면 서로에게 절실한 사안을 주고받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야권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 등을 관철하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집권세력에 제공할 각오를 해야 한다. 대북정책에서의 초당적 협력, 현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 추진에 필수적인 제도와 정책 협조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정치의 역동성이 현실화하려면 권력을 쥔 쪽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먼저 나라의 힘을 모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대연정을 한다고 어느 한쪽이 사쿠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합의 틀 안에서 서로 협력하되 독자적인 정당과 정책을 유지하면서 경쟁을 계속하면 된다. 큰 틀의 합의정치를 하려면 지지자들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원자력방호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연정은 뜬구름 잡는 얘기로도 들린다. 하지만 정치란 불가능해 보이거나 여태껏 하지 못한 것을 이루는 데 묘미가 있다. 일본에서 삿초동맹이 성립하기까지 하급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와 같이 무모하리만큼 절실하게 동맹 성사를 위해 뛴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가 정치다우려면 우리에게도 몸을 던져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백기철 정치·사회 에디터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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