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탁기형 기자
[데이터 한겨레] 헌정 사상 45회 언급…‘국민’ 31회가 뒤이어
해방 직후 ‘조선’, ‘독립…’2000년대 ‘통합’ 자주 등장
해방 직후 ‘조선’, ‘독립…’2000년대 ‘통합’ 자주 등장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신당 창당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신당의 이름도 관심 가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정통성’과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새 정치 열망’이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에게 이런 인상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적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많은 낱말들을 역사 속 정당들이 숱하게 써먹었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 선거정보시스템과 위키백과의 자료를 종합하면, 1945년 해방 이래 정치결사체로서 이름을 가진 정당은 모두 223개였다. (기존 정당이 이름만 바꾼 경우도 독립된 당명으로 셈함.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누락된 정당이 있을 수 있음)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낱말은 예상대로 ‘민주’였다. 모두 45번 쓰였다. 특히 ‘민주당’은 1955년 자유당 정권에 대항한 야당으로 역사에 등장한 이래 지난해 5월 민주통합당이 이름을 바꾸기까지 모두 6차례나 사용됐다. 정통야당의 상징인 셈이다.
그러나 군부독재 세력도 ‘민주’라는 명칭을 종종 애용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이 1963년 만든 공화당은 ‘민주’공화당의 약칭이다. 1981년 신군부가 만든 정당도 ‘민주’정의당이었다.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야합해 만든 거대여당의 이름은 ‘민주’자유당이었다. ‘민주’는 1940년대 6번에서 시작해 꾸준히 사용되다 1980년대 12번으로 급등했다. 동시대에 폭발한 민주화 열망이 정당 이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민주 다음으로 많이 쓰인 낱말은 31번 등장한 ‘국민’이었다. ‘국민’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통령 출마를 위해 1992년 만든 통일국민당부터 권영길씨를 독자 대선후보로 냈던 국민승리21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1990년대(5회)부터 쓰임이 잦아지면서 2000년대에는 ‘민주’와 같은 9차례 등장했고, 2010년 이후에는 6번 사용돼 ‘민주’(4회)를 압도하고 있다.
새로움을 뜻하는 ‘신(新)’도 27번이나 사용됐다. 우리말 표현인 ‘새’도 9번 등장했다. 신한국당·새누리당 등이 대표적이다. 새 당을 만들면서 참신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념적 지향을 나타내는 용어도 종종 사용됐다. ‘사회’는 모두 13차례 사용됐는데, 정당정치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 유신 시대를 제외하고 꾸준히 등장했다. ‘진보’와 ‘자유’는 각각 8번이었다. ‘진보’라는 낱말은 1956년 창당된 진보당이 조봉암 간첩 사건으로 2년 뒤 해산된 뒤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40년만인 1998년에야 청년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부정선거의 대명사였던 자유당 이래 ‘자유’는 한동안 주요정당의 이름으로 사용되지 않다가, 1990년 3당 합당의 산물인 민자당(민주자유당)의 일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김종필·이회창씨가 각각 1995년과 2008년 창당한 보수정당도 자유민주연합과 자유선진당이었다. ‘보수’라는 낱말은 딱 한 번 등장한다. 보수당은 1963년에 치러진 6대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를 낸 뒤로는 자취를 감췄다.
7번 쓰인 ‘통합’이라는 말은 1995년에 처음 등장했다. 김대중씨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민주당 의원들을 흡수했지만, 이에 반대한 이기택·김원기·노무현 등의 정치인들이 당에 남아 바꾼 이름이 ‘통합’민주당이었다. 그뒤 ‘통합’이라는 명칭은 분열을 반복한 야권이 다시 합치면서 단골로 사용됐다. 현재 제1야당인 민주당의 2013년 5월 이전 이름도 민주‘통합’당이었다.
지난달 16일 ‘안철수 신당’의 이름이 새정치연합으로 발표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의 합성어?”라며 반문한 뒤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와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총재가 1997년 정권교체를 위해 손잡은 디제이피 연합을 상기시키며 ‘안철수 신당’을 살짝 깎아내린 것이다. 국민공모를 거치는 등 아무리 새 정치를 갈망해도 이름만큼은 기존 정당과 차별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게 증명된 사건이기도 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만들어낼 통합신당의 이름이 더더욱 궁금한 이유다.
글 김태규 기자, 데이터분석 조승현 서규석 dokbul@hani.co.kr
※한겨레 페이지에서 보다 자세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