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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반칙의 여왕’과 ‘반칙의 사회’

등록 2014-02-10 13:59수정 2014-02-11 08:43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4
변칙·반칙으로 일신의 안일 도모한 사법부
거리에 선 진실은 칼이 되고 불씨가 될 것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6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쁜 표정으로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6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쁜 표정으로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계파 정치 시절, 정치인들이 보스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한 자리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둘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기대, 셋은 선거 때 표를 더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득표였지요. 득표에 도움만 된다면 보스를 위한 육탄방어도 불사하는 게 정치인들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절대 다수의 여당 정치인들이 부복하는 것은 물론 무릎으로 기는 까닭은 그 득표력 때문입니다. 잘만 보이면 그의 후광을 입어 재선 가도를 달릴 수 있고, 잘 못 보이면 17대 총선 때처럼 박사모의 표적이 돼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재선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정치인들이 그런 보스에게 무슨 일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점에선 부친 박정희씨보다 더 행복한 보스가 바로 박 대통령입니다. 물리적 억압이 아니라 득표력으로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붙은 게 ‘선거의 여왕’, 이보다 더 우아하고 강력한 권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호칭을 바꿔야겠습니다. 반칙의 여왕! 엊그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로 이런 호명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경찰, 검찰에 이어 마지막 심판 기관인 사법부마저 최고 권력의 눈치에 따라 반칙과 변칙으로 시비를 왜곡시키게 됐으니 말입니다. 굳이 김용판씨가 저지른 일을 되새길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만 판결은 두고두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마지막 토론회에서 쪽박을 찬, 선거 이틀 전 한밤중 김씨는 엉터리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엔 댓글 분석 범위를 하드디스크에 제한하도록 했습니다. 우물에서 숭늉 찾으라는 것이었죠. 이에 대해 재판장은 ‘아쉽다’고 했습니다. 법적 판단에 그런 말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문제가 뭔지는 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러고는 그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죠. 문제는 핑계입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권은희 수사과장의 입에 너무 의존해, 김씨의 의도와 목적을 직접증거든 간접증거로든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했다고, 무죄 선고의 책임을 검찰에 떠넘긴 것입니다.

물론 그의 핑계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검찰 수사도 부실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죠. 재판부도 잘 아는 사연!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검찰이 기소하자 청와대가 나서서 검찰총장을 찍어냈습니다. 그때 동원된 것이 사생활 사찰, 흘리기 공작, 대면 협박 등의 반칙이었습니다. 총장이 퇴진하자 법무부는 수사팀의 팀장과 부팀장을 징계하고 경질했습니다. 수사중인데도 수사 검사들을 교체해버렸습니다. 사건을 지휘하던 차장검사는 수시로 ‘무죄 판결이 날 수밖에 없다’고 수사 방향을 압박했지요.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그게 기적이었습니다. 재판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저도 그 수렁에서 빠져나가야 했으니, 수사의 빈틈을 노린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기소와 판결을 이렇게 요약해봤습니다. 문제는 ‘1+1=?’이었습니다. 푸는 건 공익의 대표기관이라는 검찰입니다. 물론 채점은 사법부 몫입니다. 청와대나 법무부는 애당초 검찰 손에서, 이 문제가 문제로서 성립 안 된다고 끝내주길 바라고 그렇게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채동욱 검찰이 기소하자, 엉뚱한 답을 내도록 했습니다. ‘2’를 제외한 숫자만 내도록 한 것이죠.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가장 잘 한다는 검찰이 그런 답을 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1 < ? < 3 사이의 자연수’라는 답을 냈죠. 수사팀은 고민 끝에 그런 식으로 재판부에 공을 넘겼죠.

이를 받아든 재판부도 고민을 무지 했을 겁니다. 채점 과정을 정리한 판결문이 A4 용지로 100장이 넘었다니 말입니다. 사실 삼척동자도 아는 걸 재판부가 모를 리 없습니다. 재판부가 고민한 데는 마찬가지로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을 겁니다. 고민 끝에 낸 것이 바로 그 아쉽지만 무죄라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문제도 성립하고 답도 있지만, 검찰의 답안 작성이 잘못돼 무효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법부는 그동안 ‘공판 중심주의’란 걸 강조해왔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검찰이 장난 칠 수도 있고, 또 수사 과정에서 실수도 할 수 있으니, 재판 과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김용판씨의 범죄를 따지지 않고, 검찰의 잘잘못만 따졌습니다. 어떻게든 ‘독배’를 피하자는 생각이 아니고는 못할 짓이었지요. 변칙과 반칙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이 정권이 총체적으로 반칙과 변칙을 일삼으니, 그들 또한 변칙과 반칙으로 일신의 안일을 도모한 것입니다.

백주대낮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만 이 정권 앞에서는 불가능이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잘 아실 겁니다. 그건 하늘을 가린 게 아니라 제 눈을 가린 것에 불과하고, 제 눈에 안 보인다고 하늘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게다가 검찰과 법원은 그 좋은 머리로 꾀를 냈습니다. 국민의 눈을 가리면서 손가락 두어개를 펼쳤습니다. 그 사이로 하늘이 보이도록 말입니다.

그나마 성공했다고 속이 후련할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법원까지 저렇게 부복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그렇듯이 진실 또한 판결 하나로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기관이 은폐하거나 왜곡한 진실은 거리로 내몰리고, 거리에 선 진실은 칼이 되고 불씨가 됩니다. 정권은 서둘러 불씨를 흩어버렸지만, 그 불씨들은 거리로 들로 튀어나가 요원의 불길로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기관의 선거 중립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경험으로 보면 지난 대선 때 권력기구들이 일제히 여당 후보를 지원한 게 무죄였으니,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도 정부기관이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것도 무죄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것이 바로 ‘엄정 중립’의 뜻 아닐까요? 공직자들은 꽤나 당황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검찰도 사법부도 마찬가지겠죠. ‘선거의 여왕’과 ‘반칙의 여왕’. 국민의 사랑을 받던 사람과 국민을 속이는 사람. 착잡한 변신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도 반칙 사회로 빠져들고 있으니 더욱더 착잡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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