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왼쪽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뉴스분석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
‘대선 불복’ 내세워 으름장
진상 규명은 공방 속 흐지부지
독선적인 박 대통령 태도
‘기선 제압’ 강경파 의도 맞물려
야당 압박 수위 점점 높여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
‘대선 불복’ 내세워 으름장
진상 규명은 공방 속 흐지부지
독선적인 박 대통령 태도
‘기선 제압’ 강경파 의도 맞물려
야당 압박 수위 점점 높여가
독재정권 시절 야당은 “야당탄압”이라고 외치는 것이 유일한 무기였다. 뭐든지 야당을 건드리면 야당탄압이었다. 검찰이 야당 의원의 부패 혐의를 수사해도 야당탄압이라고 반발했다. ‘야당탄압’ 프레임은 오랫동안 유효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야당과 국민을 제압하고 있다. 뭐든지 박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공격하면 “대선 불복”이라고 난리를 친다. 대통령을 공격했던 사람은 “대선 불복은 아니다”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하고, 박 대통령의 문제점은 흐지부지된다. 신기한 것은 ‘여당이 협박하고 야당은 굴복하는’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4월부터 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대선 불복 프레임 뒤에서 진상 규명을 끝없이 방해했다. 8월에 국정원 국정조사에서도 이런 식의 공방이 반복됐다. 무기력한 야당 지도부와 현 정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언론 지형이 악순환을 도왔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양승조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보이고 있는 반응도 정확히 ‘대선 불복 프레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정현 홍보수석이 기자들 앞에서 흥분해 소리를 지르고, 여당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규탄 집회를 하는 것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장면이다. 일시적이라지만 국회 의사 일정을 집권 여당이 파행시킨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정현 수석과 새누리당은 왜 그렇게 ‘오버’를 하는 것일까? 청와대와 여권 내부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이 독선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정쟁’, ‘국론 분열’, ‘갈등’, ‘국가와 국민’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비판했다. 자신에 대한 공격을 곧바로 정쟁과 국론 분열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과거 독재자들의 인식과 매우 닮았다. “짐은 국가다”라는 말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절대왕권의 표현으로 사용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황우여·김한길 대표와 ‘3자 회담’을 한 바로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저도 야당 대표로 활동했고 어려운 당을 일으켜 세운 적도 있지만 당의 목적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은 당의 목적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옳고, 너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청와대 참모들이나 새누리당에 의해 전혀 걸러지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에서 합리적인 의원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둘째, 국정원 특위와 특검을 놓고 벌이는 여야 대치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강경파들의 기선 제압 의도가 작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당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려는 온건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고비에서는 ‘가급적 대치 국면으로 몰아가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관철되는 내부 구조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셋째, 공안세력과 보수 강경파들이 국정원 개혁에 조직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새누리당 홈페이지 누리터에는 국정원 개혁 특위에 합의한 황우여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국정원 개혁에 반대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서도 국정원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로서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박 대통령의 인식, 강경파의 정국 장악 의도, 공안세력의 이해관계 등은 변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국회는 지금부터 연말까지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 개혁안 등 주요 법안을 놓고 정면 충돌이 예정되어 있다. 여야 대치가 첨예해지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대선 불복 프레임의 연장선에서 ‘국정원 개혁 특위 중단’과 ‘준예산 편성’ 등을 무기로 야당을 끊임없이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장하나 양승조 발언 파문은 예고편에 불과한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박근혜 1년, 청와대 출입기자의 진단 [#207 성한용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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