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청와대, ‘언어살인’ 등 날 세우며
민주당 두 의원 발언 빌미로
각계각층 대선불복 움직임 차단

“막말·헌정질서 중단발언 계속
국회 일정 진행시켜야 할지…”
새누리, 국정원개혁 힘빼기 나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이 9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과 ‘선친의 전철’ 등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한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제명’ 카드를 꺼내며 ‘초강수’로 대응하고 나섰다. 청와대도 ‘테러’, ‘언어살인’, ‘국기문란’ 등 이례적으로 날 선 단어 등을 구사하며 양 최고위원의 발언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여야 4자 회담 타결로 정상화되는 듯하던 여야 관계가 다시 급속히 경색돼 가는 분위기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이처럼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나선 것은 최근 야권과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서 불거지고 있는 대선 불복 움직임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의 공판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와 진술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장하나 민주당 의원의 ‘대선 불복 및 대통령 사퇴’ 선언과 양 최고위원의 ‘선친의 전철’ 발언이 오히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반격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청와대는 이번 양 최고위원과 장 의원의 발언을 ‘민주주의 위기’와 ‘국가 안위’ 차원의 문제로 격상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나오는 대선 불복 발언과 움직임을 ‘종북세력’과 연결시키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북한을 추종하면서 우리 내부에서 암약하는 사람들이 내부에 있을 때, 이러한 종북세력에게 손도 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인가”라며 두 의원과 민주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은 “대통령과 국가를 무너뜨리겠다는 그런 의도가 아니고는 (양 최고위원이) 이런 발언을 할 수가 없다. 최고위원이 당 공식 석상에서 한 얘기인데 이게 개인적 얘기인가. 3선 의원에 변호사를 한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선동을 한 것”이라고 공박했다.

새누리당은 두 사람의 발언이 사전 시나리오에 의한 야당의 조직적인 대선불복 전략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장 의원의 발언은 헌정을 중단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민주당의 대선 불복종 운동이 어떤 짜인 각본, 시나리오에 의해 ‘간 떠보기’, ‘여론 눈치 보기’를 통해서 서서히 행동에 옮기고자 하는 전략·전술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장 의원과 양 최고위원의 발언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통령 사퇴 요구와 문재인 의원의 저서 출간에 이은 잇따른 대선 관련 언급의 연장선상에 있고, 시나리오에 따른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에서 대선 불복성 발언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왔고, 그 중심에는 문재인 의원도 있다. 민주당이 그토록 국가정보원 사건에 매달린 게 결국 대선 불복의 핑계를 찾기 위해서인지 말을 돌리지 말고 차라리 장 의원처럼 커밍아웃하라”고 공세를 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여야가 합의해 출범한 국회 국가정보원개혁특위에 대한 ‘힘 빼기’ 의도도 명확히 드러냈다. 이 수석은 “(민주당이)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지만 지금 국정원법은 민주당이 국가운영 책임을 맡고 있을 때 국정원이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권한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최상이라고 만들어놓은 법”이라며 “무슨 북한에 변화가 있어서 지금 바꾸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해야 할 개혁 같으면 자신들이 집권할 때 바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의총에서 “막말과 헌정질서 중단 발언이 발언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과연 국정원개혁특위를 비롯해서 국회 의사 일정을 계속해서 진행시켜야 할지 의견을 모아달라”고 말해, 국정원개혁특위를 파행시킬 심산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를 상당한 호재로 보고 국정원 개혁 문제와 특검 요구를 덮어버리는 반전 카드로 톡톡히 활용할 것”이라며 “정국을 대선불복 대 대선승복의 프레임으로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까지 장기적으로 밀고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석진환 김수헌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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