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여왕이 괴물의 이빨을 뽑지 않자, 세상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등록 2013-09-13 20:12수정 2013-09-15 15:19

신화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공주는 여왕이 됐다. 괴물도 여왕의 소유가 됐다. 괴물은 이빨이 뽑힐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여왕은 괴물의 이빨을 뽑지 않았다. 괴물은 미친듯이 여왕의 정적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제작 김태권 만화가, 촬영 이은경
신화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공주는 여왕이 됐다. 괴물도 여왕의 소유가 됐다. 괴물은 이빨이 뽑힐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여왕은 괴물의 이빨을 뽑지 않았다. 괴물은 미친듯이 여왕의 정적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제작 김태권 만화가, 촬영 이은경
[토요판] 박근혜와 국정원, 50년의 업보
국정원과 악연이던 박 대통령
개혁 내세워 남재준 임명했지만
정상회담 대화록·이석기 내세워
오히려 정치 전면 나선 국정원

박근혜 대통령이 시켰나
아니면 남재준 질주 방치하나
어느 쪽이 진실인진 모르지만
이 정권에서 국정원 개혁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다

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왕이 있었다. 왕은 괴물을 만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물은 왕의 정적들을 잔인하게 물어 죽였다. 왕은 괴물을 곁에 두고 아꼈다. 왕에게는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괴물을 싫어했다. 괴물도 공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괴물이 왕을 물어 죽였다. 공주는 궁에서 쫓겨났다.

유신 시절 중정부장 김재규와의 갈등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정보원은 악연이었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육군 소장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 내내 무소불위의 철권을 휘두르며 독재정권을 지탱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최고 권력자였던 시절 13년 동안 ‘큰 영애’(1961~1974)였고,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1974~1979)였다. 김재규 부장은 신직수 부장의 뒤를 이어 1976년 12월4일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했다.

‘퍼스트레이디 박근혜’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최태민(1912~1994)이라는 문제의 인물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목사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1974년 어머니를 잃고 상심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환심을 샀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를 깊이 신뢰했다.

당시 ‘박근혜 담당 비서관’이었던 최필립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간의 민심을 수집해 전달했다. 그중에는 정부 요인들, 특히 정권의 2인자였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비위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딸이 넘겨준 정보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부장을 추궁했다. 당황한 김재규 부장은 최태민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최태민이 큰 영애를 등에 업고 온갖 비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의 두터운 보고서가 작성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딸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모함이라고 반발했다.

1977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의 이른바 ‘친국’(임금이 죄인을 직접 신문하는 것)이 벌어졌다. 최태민, 김재규, 박근혜 등 당사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 일이 있다.

“중정부장이 아버지에게 보고해 다 불러서 직접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횡령했고 사기를 쳤나 보고를 하고 아버지가 묻자 답이 확실하고 그런 게 없었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최태민 목사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김재규 부장이 모함한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신화는 이어진다. 괴물은 약간의 개조를 거친 뒤 새로운 왕들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괴물은 평민으로 추락한 공주를 감시했다. 공주는 괴물에 대한 증오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전두환 정권은 1981년 1월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다. 장세동 부장을 비롯해 강성 인물들이 수장을 맡아 박정희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정권 안보를 위한 온갖 공작을 도맡았다.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시련의 시기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패배했다. 1998년 재보선에서 국회의원이 됐지만 그의 신분은 ‘야당 의원’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그는 정보기관의 집중적인 사찰 대상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정권교체를 하고서도 중앙정보부 기조실장 출신인 이종찬씨를 안기부 수장으로 앉혔다. 안기부는 수사권을 내놓지도 않았고, 국내 부문을 분리하지도 않았다.

2007년 12월 한나라당이 집권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당 의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하지만 국정원의 사찰은 오히려 강화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치적 긴장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과 국정원 관계자들의 이런 증언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0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고 나서자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댓글을 단 일이 있다. 국정원 댓글의 원조 피해자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다.”

“원세훈 원장은 임기 내내 박근혜 대통령을 철저히 견제했다. 심지어 국정원 직원 중에서 박근혜 쪽에 줄을 댈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을 모조리 한직으로 밀어냈다.”

“원세훈 원장은 박근혜가 아니라 안철수를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는지 가능성을 검토한 일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

역지사지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나는 평생 국정원의 핍박을 받았다. 특히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정원 공작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선 막판 댓글은 국정원의 ‘면피’ 행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국정원 댓글에 대해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쏘아붙이듯 반박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정원을 정권 보위 임무에서 해방시키자”

신화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공주는 여왕이 됐다. 괴물도 여왕의 소유가 됐다. 괴물은 이빨이 뽑힐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여왕은 괴물의 이빨을 뽑지 않았다. 괴물은 미친듯이 여왕의 정적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이라는 특이한 인물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국정원을 뒤집어엎겠다는 구상이었다는 것이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남재준 원장은 자신과 뜻이 맞는 군 출신 몇 사람을 국정원에 데리고 들어갔다. 감찰실장에는 법조인을 앉혔다. 조직개편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가동했다. 상당한 변화가 기대됐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국정원의 대대적인 개혁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남재준 원장이 국정원의 노회한 간부들에게 포섭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개혁은 고사하고 남재준 원장 취임 뒤 국정원은 오히려 정치 전면에 당당하게 나섰다. 국정조사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엔엘엘)을 포기했다고 억지를 썼다. 이어서 이석기 의원 사건을 들고나왔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국정원 요원들이 압수수색과 체포를 명분으로 의원회관에 집단 난입해 맨얼굴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숙주론’으로 민주당을 압박했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손잡고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는 모양새다.

어쩌다가 국정원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을까? 두 가지 추론이 있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이 시켰다는 분석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깨알 리더십’과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국정원의 위상이 근거다. 둘째, 명예를 중시하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질주를 박근혜 대통령이 방치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쨌든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 개혁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다. 신기남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 국정원개혁특위가 설치되면 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이다. 그는 2005~2007년 3년 동안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냈다. 당시 국정원의 권한과 기구를 축소하고 감독권을 강화하는 개혁을 추진하다가 청와대의 견제로 포기한 일이 있다. 그에게 국정원을 왜 개혁해야 하는지 물었다. 뜻밖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국정원에는 유능한 현장요원들이 너무나 많다. 국정원을 정권 보위 임무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요원들이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다.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 스스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회견 이틀 전 “개혁 완수” 고수한 윤...김건희 문제, 인적 쇄신 어디까지 1.

회견 이틀 전 “개혁 완수” 고수한 윤...김건희 문제, 인적 쇄신 어디까지

[단독] 국방부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북 파병으로 사이버 위협 커져” 2.

[단독] 국방부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북 파병으로 사이버 위협 커져”

[영상] “사모, 윤상현에 전화” “미륵보살”...민주, 명태균 녹취 추가공개 3.

[영상] “사모, 윤상현에 전화” “미륵보살”...민주, 명태균 녹취 추가공개

정부, 교전 중인 우크라에 무기 지원?…“파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4.

정부, 교전 중인 우크라에 무기 지원?…“파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기자회견 앞둔 윤 대통령 “개혁에는 저항 따라…반드시 완수” 5.

기자회견 앞둔 윤 대통령 “개혁에는 저항 따라…반드시 완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