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박 대통령 ‘셀프 개혁’ 이틀만에 또 궤변
국가정보원(원장 남재준)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 무단 공개에 이어 또 한번 정치권을 향해 정면 ‘도발’을 감행했다.
국정원은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강변하고, 개혁은 남재준 원장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내놓았다.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 추진 움직임에 맞서 지난달 24일 불법·정치개입 논란을 무릅쓰고 대화록 공개를 감행하며 국면전환을 시도했던 국정원이 이번에도 정치권의 남재준 원장 해임 요구와 국정원 개혁 분위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골적인 정치 개입에 나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셀프 개혁’을 요구한 지 이틀 만에 나온 국정원의 이런 행동은 국회와 여야 정당의 대화록 공개 파장 수습 노력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국정원은 대변인 명의로 낸 성명에서 “엔엘엘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은 남북 정상이 수차례에 걸쳐 백령도 북방을 연한 엔엘엘과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 수역에서 쌍방 군대를 철수시키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경찰이 관리하는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대화록 내용 어디에도 일부의 주장과 같은 ‘엔엘엘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등거리·등면적 얘기을 직접 하지 않았으니 곧 엔엘엘 포기’라는 식의 궤변이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 ‘공동어로구역 설정 시 우리 군함만 덕적도 북방선까지 일방적으로 철수하게 된다’는 내용의 지도까지 붙였다. 국정원은 “육지에서 현재의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대를 수원-양양선 이남으로 철수시키고, 휴전선과 수원-양양선 사이를 ‘남북공동관리지역’으로 만든다면 ‘휴전선 포기’가 분명한 것과 같다”는 터무니없는 비약까지 동원했다.
그동안 대화록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던 국정원이 왜곡·확대 해석을 통해 대화록 내용에 대한 자체 판단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는 대화록 내용에 대한 해석을 놓고 빚어지고 있는 정치권 논란에 직접 뛰어들어 영향을 미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대화록 공개의 적법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함으로써, 최근 야당이 집중 제기하고 있는 남재준 원장 해임 요구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정원은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해서 국가안보를 고려치 않고 생명선과도 같은 엔엘엘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고, 그 내용이 왜곡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등 논란이 증폭되어, 진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국가안보 수호 의지에서 공공기록물인 대화록을 적법 절차에 따라 공개한 것인바,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대화록을 무단 공개해 국익을 훼손하고 정치적 논란을 극대화시킨 장본인이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과 공개 의도의 ‘선의’를 강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엔엘엘 포기를 기정사실화하고, 결과적으로는 북한과 같은 주장을 펴는 자가당착과 논리적 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정상회담 내용을 국정원 주장대로 해석하면 남북 정상이 엔엘엘 포기에 합의한 것처럼 되고, 북한의 주장이 정당성을 갖추게 된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10월9일치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노무현 대통령도 엔엘엘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국방장관이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언급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정원은 성명에서 남재준 원장 체제로 자체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국정원은 “남재준 국정원장 취임 후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국가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일부 부서의 통폐합과 조직개편, 인사제도와 업무규정 정비, 인적 쇄신 등 강력한 자체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 때의 댓글 의혹 등 논쟁이 지속되고 있어 국정원 내에 자체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제2의 개혁작업에 착수, 대내외 전문가들의 자문과 공청회 등을 열어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분출되기 시작한 국정원 개혁 요구를 차단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개혁의 방향타를 잡아나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국정원 성명에 대해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국정원이 오만방자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엔엘엘 논란을 없애기 위해 지금 국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남북정상 대화록의 열람을 진행중이다. 자신들의 불법을 뒤덮기 위해 변명으로 일관하는 국정원은 셀프 개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거꾸로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막가파’ 국정원장, 해임해야 [한겨레캐스트]
<한겨레 인기기사>
■ 대운하 아니라더니…‘MB의 4대강’ 국민 속였다
■ “노 전 대통령 발언, NLL 포기 맞다” 국정원 또 ‘도발’
■ 아시아나 사고 현장에 바지 입은 여승무원 왜 한명도 없나 했더니…
■ 고려대 ‘학부모 성적 열람 전자시스템’ 도입에 학생들 “부글부글”
■ [화보] 아시아나 항공기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현장

■ 대운하 아니라더니…‘MB의 4대강’ 국민 속였다
■ “노 전 대통령 발언, NLL 포기 맞다” 국정원 또 ‘도발’
■ 아시아나 사고 현장에 바지 입은 여승무원 왜 한명도 없나 했더니…
■ 고려대 ‘학부모 성적 열람 전자시스템’ 도입에 학생들 “부글부글”
■ [화보] 아시아나 항공기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현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