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한겨레 창간 25돌 릴레이 기고 ② 생각하는 나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대북정책 추진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일관된
기본방침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국내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는게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실패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리먼브러더스 파산 쇼크 등에 따른 미국 경제 퇴락과 국력의 쇠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와 비례해 정치·안보 면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일극지배와 단독행동주의 프로젝트는 완전히 파산했으며, 미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서도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맹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지금 아베 정권은 이런 지세학(地勢學)적인 변화를 지켜보며 정치·안보 면에서 일본의 지역대국화를 추진하면서, 일찍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한 ‘아메리폰’(미국+‘닛폰=일본’)으로서의 준패권국가 지위를 추구하는 신보수주의 세력의 대표다. 일본 국민 다수가 ‘우경화’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정당정치 차원에서는 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국군’화, 과거 식민지배와 전쟁 다시 보기를 추진하는 가운데 아베 정권은 일본의 ‘전후국가’ 체제 탈피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놓고 무력충돌 위기에 처한 배경에는 패권다툼이 있고, 이는 백여년 전 청일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찍이 갑오농민전쟁에서 청일전쟁에 이르는 중-일 패권경쟁이 그러했듯이, 중국의 패권적인 대두와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의 쇠퇴, 그리고 일본의 정치대국화라는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 와중에서 한반도는 권력정치적 쟁탈의 경쟁장이 되고 있다. 그 초점으로 떠오른 것이 북한을 둘러싼 위기다. “(새 체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좌절당한 현존 사회주의국”인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발사가 미국의 핵우산에 의한 안보체제를 흔들면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핵무장론이 공공연히 대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핵 도미노 현상을 피할 수 없고 동북아시아는 냉전기의 쿠바 위기를 능가하는 핵전쟁 위협에 노출될 것이다. 그러면 부시 정권이 후세인 정권을 외과수술적으로 붕괴시켰듯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체제 변화)를 밀어붙이면 될까. 북한은 미국의 선제공격 우려 속에 후세인과 카다피의 운명을 피하고 군사력 열세를 보완하기 위해 핵 보유 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므로 이미 그런 외과수술적인 레짐 체인지는 불가능하다. 또 미국의 국력 쇠퇴를 보더라도 그런 군사적 선택은 불가능하다. 최근 오바마 정권은 중동·아랍 정세 전환에 힘을 쏟으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중국과 한국에 역할을 분담시키는 ‘비관여 정책’을 취해 왔다. 그 결과 미국과의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북한의 도발은 더욱 거세져 제2차 한국전쟁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다. 북한의 노림수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새로운 남북 공존체제를 조성해 남북 교차승인(미·중·일·러 4개국의 남북 승인과 관계 정상화)을 얻어내는 데 있다는 건 명백하다. 그것만이 북 체제 존속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북한 관여정책을 역전시켜 오히려 남북관계를 빼도 박도 못하게 악화시켰다. 그 결과 한국의 국가 리스크(위험도)는 높아지고 경제 운영조차 악영향을 받게 됐다. 그 때문에 한국은 동북아에서 이니셔티브(정세 주도권)를 쥐지 못한 채 안보와 외교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변 대국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한을 둘러싼 위기 수습은 동북아 지역 파워 시프트의 행방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만약 한반도가 독일식 재통일(흡수통일)로 간다면 중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떠안게 되고, 미국·일본이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한국은 미·일 2대 해양세력과 한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제2차 한국전쟁과 같은 거대한 희생을 그 대가로 치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한민족 전체한텐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김대중 정권 때 시작한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 양자협의, 그리고 중국을 호스트국(의장국, 주재국)으로 한 6자협의를 통해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면서 북한의 핵 포기를 끈질기게 압박하고 동시에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미국, 중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권교체 때마다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대북정책 추진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일관된 기본방침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국내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 옛 서독의 ‘동방정책’과 그 연장선상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린 한스 디트리히 겐셔의 대동독·동유럽·소련 외교다. 그런 일관된 대북정책이 실효를 얻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옛 서독의 1966~69년 대연정과 같은 여야당 연립을 실현시켜야 한다. 대북정책 분열이 지역주의와 얽히고 그것이 여야당 간의 대립과 얽히는 한 한국 안의 ‘남남대립’은 해소될 수 없다. 그것은 북한한테 활용할 여지(이른바 ‘북풍’)를 줄 뿐 아니라 주변 대국들의 개입을 부를 수밖에 없다. 예전 대한제국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만약 여야당 대연립이 어렵다면, 하다못해 프랑스의 미테랑, 시라크 정권과 같은 ‘보혁연합’(코아비타시옹)의 길을 모색하면서 내정은 야당 당수인 총리가 맡고 대북정책을 포함한 국가 안보나 외교 분야는 여당 당수인 대통령이 맡는 통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정당의 탈지역주의화가 불가결하며, 연고주의·인맥주의(네포티즘)에 치우친 정당 행태를 쇄신해 더 열린 정당정치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처럼 노동자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당이 미성숙해서 그것이 거꾸로 일부 노동정당의 ‘과격화’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조직, 미조직 노동자를 불문하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민당형 정당이 일정한 세력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 내 부의 편재와 지역간·계층간 격차는 심각하며, 그 결과 유권자, 특히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증폭되고 결국은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조차 엷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를 막고 서울 일극집중의 폐해를 시정하며, 지역경제 재생을 통한 고용 안정과 내수 확대를 꾀해 수출 지향으로 기운 한국 경제를 좀더 균형 잡힌 경제구조로 바꿔가기 위해서는 사회보장과 의료, 연금을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재벌계 대기업에 의존한 수출 편중 경제성장과 그 낙수효과(트리클다운)를 통한 국민경제 향상이라는 번영의 도식은 이미 한계에 부닥쳤으며, 한국은 어떤 형태로든 내수 확대형 성숙경제로의 연착륙이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 원화 강세를 단지 한국 경제의 위기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물가 안정을 통한 내수 자극 경제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며, 원화 약세=‘국민 출혈’을 통한 수출 편중=재벌기업 중심의 성장 노선으로 복귀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원화 강세를 활용해 석유 등의 물가 안정을 꾀하고 충실한 소득 재분배가 이뤄지는 복지정책으로 중소 영세기업 활성화와 저변 확대에 성공한다면 독일형의 안정된 성장을 통한 고복지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일본과 달리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결코 높지 않다. 건전한 재정수지와 원화 강세를 활용해 이를 추진한다면 균형있는 지속 성장을 확보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새로운 성장과 균형, 소득 재분배와 사회보장을 두루 살피는 노선을 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력은 부의 편재나 독점이 아니라 민생 안정과 분권화, 그리고 정치 참여를 통해 더욱 충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갖가지 내부 분열과 대립, 갈등을 해소하고 분권화와 참여를 통한 정치통합이 가능한 사회로 이행해 간다면, 더욱 일관된 대북정책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일·중 간의 대립 해소를 위한 중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동북아의 베네룩스 3국, 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같은 중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때 한국은 명실상부한 동북아 허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내부 갈등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미들 파워로서 동북아의 허브가 돼야 한다. 번역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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