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커버스토리] 개성공단 약사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시작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0월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단 건설을 협의하면서 물꼬를 텄다. 이후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의 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가 공단 건설을 위한 토지 개발에 합의하고 이를 공식화했다.
공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6월에 착공됐다. 공사 시작 1년 만인 2004년 6월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2만8000평의 부지가 조성됐고, 6개월 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첫 제품, ‘통일냄비’가 생산됐다. 이 제품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1000세트가 1시간도 안 돼 매진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개성공단은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북한은 공단 조성을 위해 유사시 남한에 대한 기습공격 임무를 맡은 2군단 등 군부대와 주요 기지를 북쪽으로 10㎞ 이동 배치하는 등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발전을 거듭해온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이 업무보고에서 “북핵 해결 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남북 관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해 11월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쪽 인원을 최대 880명으로 제한하고 남북 통행 시간대와 통행 허용 인원을 축소하는 등 이른바 ‘12·1 조치’를 시행했다.
북한은 2009년 3월에도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 기간에 3차례 육로 통행을 차단했다. 같은해 9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하면서 ‘12·1 조치’는 해제됐지만, 남한은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개성공단 신규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5·24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북 교류협력 관련 군사적 보장 조치의 전면 철회를 발표하기로 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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