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왼쪽)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17일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마이크를 만지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수정요구 받는 공약 따져보니
전문가들 “증세 불가피하지만 재정개혁 먼저 논의하는 게 순서”
전문가들 “증세 불가피하지만 재정개혁 먼저 논의하는 게 순서”
새누리당 등 보수진영 한쪽이 ‘재검토’를 요구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약은 기초노령연금 확대와 5살 이하 무상보육, 4대 중증질환자 진료비 100% 보장 등이 대표적이다. ‘예산 부족, 재원마련의 어려움’을 들어 공약을 모두 이행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를 두거나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당선인이 65살 이상 노인에게 매달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현재 10만원 수준에서 20만원으로 확대하는 데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 예산은 4년간 20조원가량이다. 암·뇌혈관·심혈관·희귀성 난치병 등 4대 중증질환 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데에도 같은 기간 6조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봤다. 2살 이하 영아의 보육료 전액 지원과 3~5살 어린이의 누리과정 지원에 투입되는 추계 예산은 3조7860억원이다.
박 당선인은 공약과 필요 재원이 일치하도록 철저하게 검증했다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재원 과소추계’ 논란은 대선 과정에서도 불거졌었다. 그러다 정부 부처 업무보고 과정 등에서 추가 재정 투입 불가피론이 나오면서 재점화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박 당선인 쪽이 제시한 소요예산에 견줘 기초연금 도입엔 7조원, 무상보육 정책에 5조원 등 한해 12조~13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인수위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관련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도 16일 ‘신정부 복지정책 추진방향’ 정책토론회를 열어 필요재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4대 중증질환 치료비의 경우 6조원이 아닌 21조원이 필요하고, 기초노령연금 확대를 위한 예산도 40조원이 투입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박 당선인이 제시한 세출 구조조정이나 지하경제 양성화로는 재원 확보가 쉽지 않다는 문제제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세청의 한 국장은 “한해 국세청이 걷는 세금 130조원 가운데 90% 이상이 자진 납세다. 조사인력 7000여명을 동원해 걷는 세금은 3%인 4조원에 불과하다. 세무조사 강화나 지하경제를 드러내 탈루세금을 매년 5조~6조원씩 추가로 걷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자영업자, 신용불량자 등 사정이 어려운 생계형 탈세도 상당해 세금을 제대로 걷으면 부작용도 커진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예산 절감이나 세출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인수위가 이달 말까지 세출 구조조정안을 내라고 했으니 어떻게든 쥐어짤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을 줄이게 되면 지역경제, 고용, 중소기업 등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도 커진다”고 우려했다.
딱히 해법이 없자 보수진영이 일제히 복지 축소를 겨냥한 공약수정론은 들고나온 것이다. 복지 축소를 우려하는 쪽에선 해결책은 증세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약이행 의지를 보이는 게 먼저라고 지적한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박 당선인 쪽에서 복지공약의 수혜 대상과 시행시기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약에 필요한 재정 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마련할 수 있는지를 먼저 내놓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예산 낭비를 줄이는 재정개혁은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불요불급한 재정지출 구조조정이 먼저 이뤄져야 증세에 대한 국민의 저항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박 당선인이 대기업에 대한 조세혜택을 줄여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피하려다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대기업 비과세 감면액이 노무현 정부 때의 21조원에서 31조원으로 10조원나 늘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세원 확대 방안은 대기업 조세 감면제도를 축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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