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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구중궁궐’ 청와대 들어간 사람들 변하더니…

등록 2013-01-10 15:16수정 2013-01-10 17:11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뿐 아니라 참모들로부터도 고립돼 있다. 백악관에서 혼자 볼링하는 대통령을 만나고 매료된 어느 말단 보좌관의 이야기는 청와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왼쪽)와 백악관 전경. 청와대사진기자단ㆍ위키피디아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뿐 아니라 참모들로부터도 고립돼 있다. 백악관에서 혼자 볼링하는 대통령을 만나고 매료된 어느 말단 보좌관의 이야기는 청와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왼쪽)와 백악관 전경. 청와대사진기자단ㆍ위키피디아
노태우 때 본관 신축…노무현 때 구조 바꾸려다 포기
살다보면 권위주의적으로 바뀌고 절간 같은 집무실
1월21일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이 열리고, 2월25일에는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다.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와 백악관에 쏠리는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와 백악관을 비교하며 그 차이를 살펴본다. <한겨레> 박찬수 기자는 김대중정부인 2000년 10월~2002년 3월 청와대 출입기자를 지냈고, 2003년 7월~2006년 6월에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 정치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편집자

1990년 2월20일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뒤편 수풀 속에서 글씨가 새겨진 표석이 발견됐다. 그동안 짙은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신축공사 과정에서 주변을 정리하던 중에 비로소 사람들 눈에 띄게 된 것이다.

화강암 암벽을 깎아 만든 가로 2m50cm, 세로 1m20cm 크기의 이 표석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씨가 해서체로 쓰여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우리나라 금석학 대가 임창순옹(1999년 사망)을 모셔다 글씨 감정을 부탁했고, 임옹은 글씨가 3백~4백년 전에 쓰였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청와대는 옛 본관 터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쓴 표석을 새로 세웠고, 이 사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올랐다. 그러나 실제로 수백년 전에 이 표석이 세워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표석 발견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경호실의 한 인사는 “표석이 조선시대에 세워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일제시대 이곳에 조선총독관저를 지으면서 표석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추정만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풍수학의 대가로 꼽히는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조선시대엔 지금의 청와대 터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특정 지점에 표석을 묻어놓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게 하는 건 대원군이 많이 썼던 일종의 정치적 수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자리가 명당이란 주장은 오래 전부터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제기됐다. 고려시대 숙종 9년에 왕실의 이궁(離宮)을 현 청와대 터에 지었고, 조선 태조가 새 도읍을 물색할 때 이궁 터는 너무 협소해 여기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경복궁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 8년엔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의 후원을 조성해 각종 정각과 누각을 지었다. 수백년 전부터 청와대 터를 길지(吉地)로 여겼다는 뜻이라고 청와대 홈페이지에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주인만 되면 권위주의적 인물로 바뀌는 청와대 터는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청와대의 문제는 주산인 북악산이 수려하지만 규모가 인왕산에 비해 작아, 이런 곳에 외로이 오래 거주하다 보면 왜소한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 전 교수는 “이건 풍수학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환경심리학적 해석이다. 청와대 지대가 꽤 높아 이곳에선 남산과 서울시내를 모두 굽어볼 수 있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실제로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출입기자들과 산행할 때 “천하제일복지란 글도 권력자 입장에서는 지금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궁궐은 암투 모해 음모가 들끓었던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꼭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청와대는 흔히 구중궁궐에 비유된다. 여기엔 권부의 상징이란 뜻도 있지만, 국민과 떨어져 권위의 벽에 갇혀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실제 청와대에서 근무한 많은 인사들은 본관이 ‘조선시대 왕이 살던 대궐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박준영 전 청와대 대변인(현 전남지사)은 “본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그 내부장식과 형식적 웅장미에 압도돼 저절로 궁중문화에 젖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형식적 웅장미. 누구나 청와대 본관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 본관은 전통적인 궁궐 건축양식을 본떠 지은, 말하자면 현대식 궁궐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본관은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경복궁을 잇는 일직선상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본관을 새로 지을 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서울역 쪽에서 올라오는 센 기를 피하기 위해 약간 비켜서 위치를 잡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본관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했다”고 소개했다.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의 별채를 배치했고,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 있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렸다. 지붕 위엔 청기와를 씌웠는데, 그 숫자가 15만장에 이른다. 청기와는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내구력을 갖췄다.

본관을 새로 지은 건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다. 그 이전의 본관엔 대통령 살림집인 관저가 함께 있어 장소가 매우 협소했다. 1989년 2월 조지 부시(아버지)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청와대 본관을 방문했을 때엔 수행원들의 대기장소가 마땅치 않을 정도였다. 이게 본관 신축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22명의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한 뒤 현대건설에 위탁해 1991년 본관을 완공했다. 전통적인 팔작지붕을 올린 점을 비롯해 건축학적으로 청와대 본간의 가치는 상당히 높게 평가된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참모들을 가까이 두고 싶어 본관 구조를 바꾸는 방법을 고려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문해본 결과 현 본관은 조형미 측면에서 잘 지은 건물이었다. 내부 구조를 바꾸면 그 조형미가 사라진다는 판단에서 결국 구조 변경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용성 측면에선 여러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청와대 본관은 건설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요청으로 수차례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가 치솟았지만 청와대는 추가 비용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과 정주영 당시 현대 회장의 관계가 냉랭해졌다는 건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대건설 사사(社史)를 보면, 청와대 본관을 신축한 내용은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1978년 청와대 영빈관을 지은 건 현대건설 사사에 나온다. 영빈관도 18개의 돌기둥이 건물을 떠받치는 형태의 웅장한 건물이긴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그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다. 누가 뭐래도 청와대의 상징은 본관이다. 현대건설이 영빈관을 지은 건 사사에 기록하면서 본관 건축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건 의미심장하다. 정주영 회장이 1992년 정치에 뛰어든 데엔, 청와대로부터 너무 당했다는 심리가 작용했다고 정치권 인사들은 추측했다.

청와대 경호실은 경호 차원에서 본관의 내부 구조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청기와가 깔린 팔작지붕의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한겨울에 쌓인 눈이 살짝 녹으면서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마침 순찰중이던 경호실 요원이 다칠 뻔한 사고도 있었다. 건축 당시 경호실에 근무했던 인사는 “규모만 컸지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경호할 수 있는 내부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경호실 요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형식적 웅장미를 갖춘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미국도 처음 백악관을 지을 때 어떤 형식으로 지을 것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유럽 봉건왕조 지배에서 독립한 신생국의 많은 인사들은 새로 지을 대통령실이 왕궁을 연상시키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제임스 호반의 설계안을 받아들여, 아일랜드의 레인스터 공작 저택을 본뜬 크고 호화로운 건물을 짓는 걸 밀어붙였다. 대통령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청와대 본관 역시 과거 궁궐의 형식미를 따른 점에선 백악관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서 지어진 건물이란 게 다르다. 권위주의적 군사문화가 뿌리깊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건축된 걸 생각한다면, 대통령만을 위한 웅장한 궁궐을 지은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그 뒤 민주화된 환경에서 통치를 하는 후임 대통령들에겐 매우 큰 불편, 아니 단순한 불편을 뛰어넘어 정치적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임기 말엔 국민과 멀어진 채 극심한 정치적 위기를 겪은 데엔 청와대의 구조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터이다.

청와대 본관으로 들어가 보자. 본관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아무 거칠 게 없이 탁 트인 커다란 회랑이 나온다. 회랑 주위엔 신라금관 모형 등 우리 문화재들이 전시돼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1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소연회실이 있다. 회랑을 따라 나선형으로 배치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이 나온다. 계단 벽엔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다. 독도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던 2008년 8월, 청와대를 방문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계단을 올라가던 이명박 대통령이 손으로 가리켰던 바로 그 지도다. 2층엔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외빈 대기실 등이 있다.

본관이 대통령 1인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다 보니, 그 웅장한 규모에 비해선 내부 방의 숫자가 매우 적고 대통령의 동선(動線, 대통령이 걸어서 움직이는 행로)이 길다. 경호실이 본관 내부구조에 불만을 표시한 이유 중 하나도 동선이 길다는 점이었다. 실용적인 면에선 낙제점에 가깝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본관 구조변경을 검토했던 것도 이런 비실용적인 측면 때문이었다. 방 숫자가 적은 대신, 모든 방들이 다 큼직큼직하다. 대통령이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는 집무실에 대해,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큰 운동장만 한 방에 대통령 책상과 회의용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흡사 절간을 연상시킨다”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혼자만의 공간에 빠져들기 쉽고, 자신만의 권위에 갇히기 쉬운 구조다. 누구나 청와대 본관에 들어서면 그 웅장한 구조에 위압감을 느낀다. 운동장만 한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면 긴장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러니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어느 장관은 집무실 문을 열고 대통령 책상 앞으로 가는 도중에 너무 긴장해 오줌을 쌌다는 일화가 그럴듯하게 나돈다.

지금의 청와대는 국민 뿐 아니라 참모들로부터도 대통령이 고립돼 있는 구조다. 리처드 닉슨부터 빌 클린턴까지 30여년간 백악관 보좌관으로 대통령을 지켜봤던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저서 <권력의 증인>에서, 보좌관 초년병 시절 대통령을 직접 만났을 때의 강렬한 인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1970년대 초, 백악관 말단 보좌관이던 그는 연설원고를 전하러 밤늦게 백악관 볼링장으로 닉슨을 찾아갔다. “대통령은 (놀랍게도) 혼자서 볼링을 치고 있었다. 닉슨은 잠시 동안이지만 권력의 올가미를 벗어던진 듯했다. … 나는 그날밤 그에게 매료됐다.”

우리 청와대에선 이런 광경을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청와대 행정관은 물론 비서관들도 대통령을 마주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공간적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 건물인 위민관에서 대통령이 집무하는 본관으로 가려면 경비초소를 2개 거쳐야 한다. 거리는 500m 정도, 걸어서 5분 가량 걸린다. 본관에 보고하러 올라가는 수석비서관들은 대개 차량을 이용해 이동한다. 이런 상태에선 대통령이 여러 명의 참모들을 불러놓고 피자를 시켜 먹으며 구수회의를 여는 백악관 풍경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Oval Office)가 참모들의 방과 바로 붙어 있고 곧바로 백악관 뜰인 로즈가든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개방형 구조라면, 청와대 본관은 참모들의 접근조차 어려운 폐쇄형 구조인 셈이다.

1998년 2월 청와대에 입성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집무실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두려 했지만, 경호 문제로 포기했다. 경호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무엇보다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면, 청사를 이용하는 수많은 일반인들까지 검문검색으로 인해 불편을 겪을 거란 반론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이동하는 대신에 내부 구조를 바꾸는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대통령은 외롭다. 구중궁궐에서 혼자 지낸다’는 말을 많이 해서 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또 그가 청와대에 입성(2003년 2월)할 무렵 미국 드라마인 <웨스트윙>이 국내에 방영됐다. 노 대통령은 이 드라마를 좋아해 꼭 녹화를 해서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봤다. 노 대통령은 여기 나오는 백악관 풍경처럼 참모들과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격의 없이 회의를 하고 싶어했다. 청와대 본관의 내부구조를 바꾸라는 지시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건축학적 가치 때문에 본관을 바꾸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 본관 가까이에 비서동을 하나 더 신축했다. 여민 1관(與民 1館. 국민과 함께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 국민의 위한다는 뜻의 위민관· 爲民館으로 이름을 바꿨다)이라 부르는 건물인데, 3개의 비서동 중 유일하게 청와대 안뜰인 녹지원 쪽에 대통령 전용 출입구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도 하나 마련했다. 대통령이 수시로 이 비서동에 들러 참모들과 만나고 직접 집무도 할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이 건물이 지어진 초기엔 노 대통령이 자주 여민관의 대통령 집무실을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다시 회귀했다. 노 대통령은 “너무 바쁜데 (전임 대통령들이) 외로울 시간이 왜 있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당시 참모들은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주일에 서너 차례 위민 1관의 대통령 집무실로 내려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의 보고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간적 배치가 중요한 이유는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다. 거리가 멀면 참모들과 신속하고 원활한 대화를 하기 어려워진다. 참모들과 쉽게 접촉하지 못하면 대통령 혼자서 또는 극소수의 측근들만 불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말처럼,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모든 사안을 다 꿰뚫어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에서 훨씬더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정책 결정에 휩쓸리기 쉽다. 대통령과 국민, 대통령과 참모의 거리를 좁히는 문제는 여전히 청와대의 숙제로 남아 있다. 정치적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은 더 외로움을 느낀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청와대 본관을 방문했던 한나라당의 어느 친이계 의원은 본관 부속실 직원들로부터 “자주 대통령을 찾아와 얘기를 해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박찬수 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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