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경화 기자
새누리·민주·안 캠프 너무 다른 스타일에 ‘멘붕’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람도 조직 논리에 물들어
자신들만 옳다고 할땐 집단최면 걸린 종교집단”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람도 조직 논리에 물들어
자신들만 옳다고 할땐 집단최면 걸린 종교집단”
‘물들다’는 ‘빛깔이 스미거나 옮아서 묻다’라는 뜻과 ‘어떤 환경이나 사상 따위를 닮아 가다’라는 뜻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존재다. 어떤 사람들과 주로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공유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또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변형된다. 어떤 집단에 오랜 시간 꾸준히 관계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집단의 생각과 논리에 ‘물들어’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얘기다.
기자로서의 중요한 덕목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게 바로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제보자가 상당히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생각에 혹하지 말고 한번쯤 그 의도를 의심 해봐야 하며, 어떤 조직을 출입할 때 그 조직 논리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 몇 개월 혹은 몇 년에 걸쳐 어떤 조직의 브리핑을 듣고 그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런 얘기를 안 듣는 사람보다 그 조직을 더 잘 이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점차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진다. 사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취재도 쉽지 않다. 취재원과의 관계는 영원히 ‘불가근불가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새누리당 출입기자로 정치부에 첫 발을 들였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곳은 이전에 출입했었던 경찰서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 딱 좋을 막말들이 여야 간에 매일 오고 갔다. 민주당에서 내놓은 정책들을 두고 새누리당은 ‘좌파정책’이라며 나라가 망할 것처럼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논리도 민주당에서는 ‘수구 꼴통’의 생각일 뿐이었다. 여당과 야당은 하나의 사안을 놓고 자기들 안에서 익숙한 문화와 논리의 틀을 세운 채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자 나는 새누리당 논리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총선 과정에서 한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의 막말이 문제가 됐을 때 새누리당 대변인이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과 함께 분노한다’라는 논평을 낸 것을 두고 새누리당의 지적이 100번 옳다는 얘기를 했다가 일부 진보주의자들에게 “새누리당 출입하더니 변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출입 10개월째인 지난해 4월 대선준비를 위해 민주당으로 출입처를 옮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갑자기 멘붕(멘탈붕괴)이 왔다. ‘정치집단’이라는 표면적인 모습을 빼고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주장하는 내용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도 판이하게 달랐다. 의원총회 하나만 보더라도 대표의 모두발언만 공개하고 비공개로 전환되는 새누리당과 달리 민주당은 몇 시간이고 공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누리당이 효율을 강조하는 대신 민주당은 당내 복잡한 사정을 그대로 노출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민주당의 논리에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지난 9월 대선판에 ‘안철수’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했고 나는 다시 안철수 마크맨이 됐다. 이때는 호기심이 앞섰다. 과연 안철수가 내걸고 나온 ‘새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일단 모든 브리핑에서 직설적인 표현과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다. 대신 두루뭉술한 형이상학적인 언어가 등장했다.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라 하겠다.”라는 것이 단골 표현이었다.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안철수 후보나 본부장,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 외에 다른 캠프 관계자들의 입에는 자물쇠를 굳게 채웠다. 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거티브가 사라진 건 좋지만 과연 이것이 새 정치의 방식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캠프 내부의 분위기나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물밑 취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공식 브리핑만으로는 안철수 캠프의 진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그것이 새 정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듯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단일화 상대였던 민주당과의 소통도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갈등만큼 민주당과 안철수 캠프의 사이에도 간극의 골이 점점 깊어지다 결국엔 별로 아름답지 못한 단일화로 끝을 맺었다.
이 세 집단을 두루 경험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어느 곳이든 각각의 캠프에 합류한 외부인사들이 캠프의 논리에 너무 쉽게 물들어버린다는 점이었다. 평소에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고의 소유자라고 알려졌던 이들도 어느 한 정치집단에 들어가기만 하면 외부의 비판에 귀를 닫아버리고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어느 조직이나 이런 ‘물듦’의 원리는 비슷하겠지만 정치판에서는 더욱 심했다. 특히 후보를 지나치게 미화시킬 때는 이곳이 종교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캠프 사람들이 모두 집단최면에 걸린 듯 진심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록 정도는 다를지라도 세 집단 모두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나는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통해 단일화가 이뤄진 뒤 다시 민주당으로 갔다. 한동안 민주당의 직설적인 표현과 상대 당을 향한 공격에 적응이 안 됐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한 뒤 나는 다시 첫 출입처인 새누리당으로 옮겼다. 아무리 예전 출입처라고는 하지만 다른 진영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정신적 충격이 왔다. 나는 아직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앞으로의 과제로 통합과 대탕평책을 내세웠다. 51대 48로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건 통합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일단 통합을 외쳐놓고 보기에 앞서 필요한 건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 먼저 상식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집권당으로서 모호한 수사를 동원하는 일을 걷어치웠으면 한다. 어떤 정책을 설명할 때는 처음으로 그 이야기에 반응하는 ‘기자’라는 국민의 비판에 발끈할 것이 아니라 성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늘 야당과의 소통의 장을 열어두는 것이 통합과 대타협의 길일 것이다. 어떤 출입처에서 온 기자라도 몇 개월에 걸쳐 물들기 전에 이 정치집단이 상식적이란 데 동의하도록 말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멘붕을 5년 뒤 내 후배들은 부디 느끼지 않기를!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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