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8월17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리 천주교나사렛공원묘지에서 장준하 선생 서거 10주년 추도식을 마친 뒤 부인 김희숙씨가 묘지 앞에 허탈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청와대 의전일지 기록 드러나
진종채 당시 보안사령관
사령부에 16절지 분량 보고 타전 의문사위, 면담 내용 추적했으나
국정원 자료 없다며 거부해 좌절 유신정권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된 장준하 선생의 사망(1975년 8월17일) 다음날 당시 보안사령관(현 기무사령관)이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이례적으로 독대한 사실이 청와대 자료를 통해 13일 밝혀졌다.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당시 보안사가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백재현·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장준하 선생 사망 사건이 터진 직후인 8월18일 오후 4시43분에서 5시30분까지 청와대 서재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진종채(사진) 보안사령관이 47분간 단독 회동한 사실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청와대 의전일지를 통해 밝혀졌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은) 1975년 1월1일 이후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던 보안사령관을 유독 장준하 선생 사망 다음날 독대했다”며 “장 선생과 관련된 보고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청와대 의전일지에는 진 사령관의 방문 사유가 ‘보고차’라고 적혀 있다. 2004년 2기 의문사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105보안부대장이 검안 현장을 방문했고 그 결과를 보안사령부 본부에 텔레타이프를 통해 보고했으며, 당시 진종채 보안사령관에게 직보됐다’고 적혀 있다. 김 의원은 “그동안 기무사령부는 의문사위 조사 때마다 ‘존안자료 없음’이라고 했는데 거짓임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맡았던 고상만 전 조사위원은 “당시 의문사위는 장준하 선생 사망에 보안사(현 기무사)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또는 청와대 경호실이 개입됐을 것으로 봤다”며 “이 기록은 보안사의 개입 의혹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했다. 고 전 위원은 “당시 의문사위도 사건 다음날 진종채 보안사령관이 박정희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논의된 내용을 추적하다가 조사시간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등 관련자료를 가지고 있는 정부기관에서 자료 공개를 거부한 탓이다. 고 전 위원은 “당시 진상규명 과정에서 1975년 3월31일자로 중정이 작성한 ‘유해분자 관찰계획 보고서’를 보면 ‘추가 공작 필요시 보고조처하겠다’는 표현이 나온다”며 “장 선생이 그 넉달 뒤에 사망한 만큼 ‘추가공작’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차례에 걸쳐 장 선생의 의문사 경위를 조사한 의문사위는 장 선생 사건에 대해서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린 이유는 새로운 증거가 나올 경우 재조사에 들어가기 위한 조처였다는 것이 당시 의문사위의 견해다. 고 전 위원은 “의문사위에서 의문사로 인정했거나 아니라고 기각했을 경우 재조사가 불가능하지만, ‘진상규명 불능’으로 정리해 재조사의 길을 열어 놓은 만큼 즉각 재조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2년 잡지 <사상계> 발행인으로 필리핀에서 막사이사이상 언론부문상을 받은 장준하 선생이 귀국 환영을 받고 있다. 박정희는 5·16장학회를 만들면서 ‘막사이사이상’과 같은 국제적인 규모로 만들겠다고 호언했지만 정작 장준하가 상을 받자 다시는 ‘막사이사이상’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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