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정마을 문정현 신부, 삼성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 문화방송 강지웅 해직 피디
토요판 커버스토리 통합진보당을 향한 길 위의 외침
▶ 4·11 총선이 끝난 지 이제 고작 한 달입니다. 날치기와 몸싸움으로 얼룩진 18대 국회의 악몽을 떨치고 산뜻한 출발을 하기도 전에,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 시비를 놓고 여의도 정가가 어수선합니다.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당권파, 비당권파가 ‘부실’이다 ‘부정’이다 한끝 차이로 드잡이를 하고 있지만, 뭐가 됐든 문제가 있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가장 무서운 유권자부터 생각했다면 처음 잘못을 발견했을 때 바로잡았겠죠. 여의도 정치권은 지금 어디를,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강정마을 문정현 신부
해군기지 공사는 계속되는데
진보정당은 뭘 하고 있나
이럴 거면 없어지는 게 낫다
삼성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알고있는 죽음만 55번째
대책 마련 시급한데
우린 어디를 바라봐야 하나 ‘그들’은 모두 길 위에 서 있었다. 지난 10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철망으로 가로막힌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젊은 여성 노동자의 주검을 실은 영구차 위에서, 서울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그리고 서울 여의도 광장 한복판에서…. “또다른 죽음은 막아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 시민 등 일하는 사람, 소외되고 탄압받는 약자’들의 이름으로 길 위에 선 그들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에 이날도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들의 이름으로 10.3%(정당 득표율), 13석을 얻었던 통합진보당은 같은 날 드잡이와 악다구니의 진통 속에 전국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이어갔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을 둘러싼 통합진보당 내부의 갈등은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성마저 수렁에 처박고, 시급한 민생 현안들을 삼켜버리고 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그들이 외치고 있다. “제발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공황 상태야.” 문정현 신부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을 이 한마디에 다 담았다. 4·11 총선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저지하기 위해선 통합진보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여겼다”던 그였다. 하지만 문 신부는 이날 “현장을 떠난 썩어빠진 진보정당이라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발파 작업이 사실상 완료됐는데도 나 몰라라 “(통합진보당이) 제 주머니 채우는 싸움”만 하고 있는 걸 보니 분통이 터져 나온다. 특히 이날은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저지했던 활동가 4명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연행을 무릅쓰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데 뭐하고 있는 건가. “정부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을 만들어 군과 민이 항구를 같이 쓰게 만들겠다고 해. 군 사령관 지휘에 따라야 할 텐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속임수지. 그 속임수에 죽는 건 결국 강정마을 주민뿐이라고. 정치권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정부의 사기극을 파헤쳐 진실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제 목소리를 내야 할 진보가 현장은 놔두고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문 신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럴 바엔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아. 그러면 또 현장에서 (우리를 대변할 정당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자생적으로 나올 거야. 시간은 걸릴지언정. 이대로 없어지기 싫다면? 어서 현장으로 돌아와야 해!”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
쌍용차 등 노동자들 소외감
통진당 갈등 시간 끌수록
진보진영 전체에 큰 짐 될 것
문화방송 강지웅 해직 피디
좋은 싸움의 동지라 여겼더니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빠
솔직한 자기고백과 반성 필요 서울의 한복판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선 이날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이윤정씨의 노제가 열렸다. 서른둘 한창때 나이의 이씨는 이날 8살, 6살 두 아이와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과 이별했다.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한 지 2년 만이다.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침묵하고 있다. 이씨를 포함해 올해만 벌써 30대 여성 3명이 세상을 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인 것 같다고 제보한 이들 90명 중 32명이 죽었고, 삼성전기 쪽 사망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55명으로 늘어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2007년부터 이들과 함께 싸워온 이종란 노무사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만 55번째인 거죠. 드러나지 않은 게 얼마나 더 있을지 몰라요.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죠. 그런데 그 일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서로 기득권만 내세우며 싸우고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하죠.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윤정씨의 주검을 실은 영구차에서 그가 말했다. “이슈가 됐을 때 반짝할 게 아니라, 약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싸워줬으면 좋겠어요.” 또다른 죽음의 현장,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연대하는 문화제(11일) 준비가 한창이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인 이창근 와락(쌍용차 정리해고자의 심리치유공간) 기획팀장의 마음은 “착잡함” 그 자체다. 3년이 다 돼 가도록 정리해고자 2646명, 징계해고자 44명, 징계자 72명, 비정규직 노동자 19명 중 단 한 사람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사이 자살, 스트레스와 관련된 돌연사 등으로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등 22명이 세상을 등졌다. “23번째 죽음은 막아야 한다.” 문화제를 여는 까닭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접하며 그는 지난달 대한문 분향소를 설치하던 때를 떠올렸다. “선거 기간 중이었죠.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을 폭행하고 펼침막을 뺏을 때, 통합진보당마저 방관만 했죠. 혹시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굉장히 섭섭했어요. 어찌 보면,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부터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에 신경을 쓰기보다 각각의 정파 이해관계에 더 신경을 쓴 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진보진영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어요. 상식적으로 문제를 풀면 (통합진보당 사태는) 장기화될 이유가 없어요.” 제주 해군기지, 삼성 반도체 문제, 쌍용차 문제 등을 바쁘게 취재해야 할 많은 기자들도 이날 거리에 있었다. <문화방송>의 파업은 100일을 넘겼고, <한국방송> <와이티엔> <연합뉴스> <국민일보> <부산일보> 등 파업중인 언론사가 태반이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 새 노조는 전날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무기한 텐트 노숙 투쟁에 들어갔다. 언론노조 1만5000명 조합원 중 4000여명이 일손을 놓고 있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공정보도·언론자유 쟁취, 낙하산 사장 퇴진을 외치는 이들에게 떨어진 건 해고와 징계뿐이다. 벌써 15명의 언론 노동자가 해고됐고, 500여명이 징계와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 “낙하산 사장에 의해 장악된 방송 현실에서 큰 피해를 보는 당사자” 중 하나가 통합진보당이다. 강지웅 문화방송 노조 사무처장(해직 피디)은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굉장히 좋은 싸움의 동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이해 안 되는 방식으로 당내 문제에 매몰하며, 스스로에게 생채기만 내는 통합진보당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에게도 해법은 간단해 보였다. “왜 문제를 계속 악화만 시킬까요. 대중 정치를 할 거라면 해답은 13석 표를 준 일반 국민들에게서 찾아야죠. 적당히 포장하고 덮고 갈 게 아니라 솔직한 자기 고백과 반성, 거기서 새 출발점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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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은 뭘 하고 있나
이럴 거면 없어지는 게 낫다
삼성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알고있는 죽음만 55번째
대책 마련 시급한데
우린 어디를 바라봐야 하나 ‘그들’은 모두 길 위에 서 있었다. 지난 10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철망으로 가로막힌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젊은 여성 노동자의 주검을 실은 영구차 위에서, 서울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그리고 서울 여의도 광장 한복판에서…. “또다른 죽음은 막아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 시민 등 일하는 사람, 소외되고 탄압받는 약자’들의 이름으로 길 위에 선 그들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에 이날도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들의 이름으로 10.3%(정당 득표율), 13석을 얻었던 통합진보당은 같은 날 드잡이와 악다구니의 진통 속에 전국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이어갔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을 둘러싼 통합진보당 내부의 갈등은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성마저 수렁에 처박고, 시급한 민생 현안들을 삼켜버리고 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그들이 외치고 있다. “제발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공황 상태야.” 문정현 신부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을 이 한마디에 다 담았다. 4·11 총선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저지하기 위해선 통합진보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여겼다”던 그였다. 하지만 문 신부는 이날 “현장을 떠난 썩어빠진 진보정당이라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발파 작업이 사실상 완료됐는데도 나 몰라라 “(통합진보당이) 제 주머니 채우는 싸움”만 하고 있는 걸 보니 분통이 터져 나온다. 특히 이날은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저지했던 활동가 4명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연행을 무릅쓰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데 뭐하고 있는 건가. “정부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을 만들어 군과 민이 항구를 같이 쓰게 만들겠다고 해. 군 사령관 지휘에 따라야 할 텐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속임수지. 그 속임수에 죽는 건 결국 강정마을 주민뿐이라고. 정치권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정부의 사기극을 파헤쳐 진실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제 목소리를 내야 할 진보가 현장은 놔두고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문 신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럴 바엔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아. 그러면 또 현장에서 (우리를 대변할 정당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자생적으로 나올 거야. 시간은 걸릴지언정. 이대로 없어지기 싫다면? 어서 현장으로 돌아와야 해!”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
쌍용차 등 노동자들 소외감
통진당 갈등 시간 끌수록
진보진영 전체에 큰 짐 될 것
문화방송 강지웅 해직 피디
좋은 싸움의 동지라 여겼더니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빠
솔직한 자기고백과 반성 필요 서울의 한복판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선 이날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이윤정씨의 노제가 열렸다. 서른둘 한창때 나이의 이씨는 이날 8살, 6살 두 아이와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과 이별했다.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한 지 2년 만이다.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침묵하고 있다. 이씨를 포함해 올해만 벌써 30대 여성 3명이 세상을 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인 것 같다고 제보한 이들 90명 중 32명이 죽었고, 삼성전기 쪽 사망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55명으로 늘어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2007년부터 이들과 함께 싸워온 이종란 노무사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만 55번째인 거죠. 드러나지 않은 게 얼마나 더 있을지 몰라요.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죠. 그런데 그 일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서로 기득권만 내세우며 싸우고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하죠.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윤정씨의 주검을 실은 영구차에서 그가 말했다. “이슈가 됐을 때 반짝할 게 아니라, 약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싸워줬으면 좋겠어요.” 또다른 죽음의 현장,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연대하는 문화제(11일) 준비가 한창이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인 이창근 와락(쌍용차 정리해고자의 심리치유공간) 기획팀장의 마음은 “착잡함” 그 자체다. 3년이 다 돼 가도록 정리해고자 2646명, 징계해고자 44명, 징계자 72명, 비정규직 노동자 19명 중 단 한 사람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사이 자살, 스트레스와 관련된 돌연사 등으로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등 22명이 세상을 등졌다. “23번째 죽음은 막아야 한다.” 문화제를 여는 까닭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접하며 그는 지난달 대한문 분향소를 설치하던 때를 떠올렸다. “선거 기간 중이었죠.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을 폭행하고 펼침막을 뺏을 때, 통합진보당마저 방관만 했죠. 혹시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굉장히 섭섭했어요. 어찌 보면,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부터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에 신경을 쓰기보다 각각의 정파 이해관계에 더 신경을 쓴 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진보진영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어요. 상식적으로 문제를 풀면 (통합진보당 사태는) 장기화될 이유가 없어요.” 제주 해군기지, 삼성 반도체 문제, 쌍용차 문제 등을 바쁘게 취재해야 할 많은 기자들도 이날 거리에 있었다. <문화방송>의 파업은 100일을 넘겼고, <한국방송> <와이티엔> <연합뉴스> <국민일보> <부산일보> 등 파업중인 언론사가 태반이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 새 노조는 전날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무기한 텐트 노숙 투쟁에 들어갔다. 언론노조 1만5000명 조합원 중 4000여명이 일손을 놓고 있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공정보도·언론자유 쟁취, 낙하산 사장 퇴진을 외치는 이들에게 떨어진 건 해고와 징계뿐이다. 벌써 15명의 언론 노동자가 해고됐고, 500여명이 징계와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 “낙하산 사장에 의해 장악된 방송 현실에서 큰 피해를 보는 당사자” 중 하나가 통합진보당이다. 강지웅 문화방송 노조 사무처장(해직 피디)은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굉장히 좋은 싸움의 동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이해 안 되는 방식으로 당내 문제에 매몰하며, 스스로에게 생채기만 내는 통합진보당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에게도 해법은 간단해 보였다. “왜 문제를 계속 악화만 시킬까요. 대중 정치를 할 거라면 해답은 13석 표를 준 일반 국민들에게서 찾아야죠. 적당히 포장하고 덮고 갈 게 아니라 솔직한 자기 고백과 반성, 거기서 새 출발점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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