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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기억해야 역사…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등록 2012-03-05 20:40수정 2012-03-06 21:42

김정남(70·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김정남(70·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인터뷰
김정남의 ‘증언, 박정희 시대’
연재 마친 김정남 전 청와대수석
“미진한 구석 많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공로자들 소개한 게
가장 보람이었다”


“민주화 이루긴 했으나
‘혁명적 과정’ 안거쳐
과거청산 제대로 못해
양심 결단에 호소할밖에”

“역사에 대한 명언 중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해야 역사’라는 말도 있지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민주화운동 30년의 의미를 일부나마 환기시켰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에 걸쳐 ‘증언, 박정희 시대’를 마무리한 김정남(70·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선생의 짧은 소회다. 지난주말 서울 서초동 김영삼민주센터 사무실에 만난 그는 “미진한 구석이 여전히 많지만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민주화의 숨은 공로자들을 소개한 게 가장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한겨레> 1면을 장식한 ‘김재규 최초 진술 육성테이프 첫 공개’부터 ‘재일동포 민주화운동가 송영순’까지 모두 20회에 걸친 연재는 한편 한편마다 독자들의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화제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미 상당 부분 알려진 사건들이어서 흘러간 옛날 이야기로 읽힐지도 모른다”는 필자의 우려는 지나치게 겸손한 기우였다.

기대를 뛰어넘은 독자 반응

“광주 비극 막을수도 있었을것”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묶였다. 그때 그 시절을 직접 겪거나 기억하는 중·장년층에서는 “미처 몰랐거나 잊고 지냈던 사실과 진실을 일깨워줘 고맙다”는 인사가 많았다. 그 시절을 과거사로만 알고 있던 젊은 독자들은 “충격적이다”거나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누리꾼들의 호응이 높아, ‘증언, 박정희 시대’ 연재가 나간 매주 화요일 아침 <인터넷한겨레>의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순위 목록에서 5위권에 들 정도였다.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기사는 예상대로 첫회였다. 1979년 11월말 육군교도소에 수감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처음 만난 변호사에게 가감없이 털어놓은 ‘박정희를 저격한 이유’는 물론이고, 그런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의 존재가 32년 만에 알려졌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었다. 특히 ‘박정희 향수’와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시점에, 군사독재정권의 비참한 종말 이유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줌으로써 ‘10·26’의 진상을 밝혀주는 역사적인 사료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재규의 진술을 새삼 공개한 까닭은, 그가 박정희를 죽인 이유가 더 큰 역사의 참극을 막고 민주화를 앞당기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떻게든 김재규를 살리고자 했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그는 “80년 그때 이른바 ‘김대중-김영삼’ 양김이 손을 잡고 김재규를 살려냈다면 ‘광주의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회한과 함께 결과적으로 김재규의 손에 죽음으로써 지금까지 ‘박정희의 잔상 또는 환상’이 사라지지 않게 됐다는 지론을 다시 강조했다. 바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12년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최근 ‘증언, 박정희 시대’ 연재를 겨냥해 ‘진보언론의 박근혜 저지 의도’ 등으로 민감한 경계 반응을 보였던 한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분명한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박근혜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렇게(새누리당의 침몰) 되지 않겠는가? 박근혜는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되어서 안 되는 이유는 시대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인물이다. (…) 박근혜는 아버지의 유산 이외에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또 얼마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가? 이런 상태로 대선에 갈 경우 그것은 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되살릴 것이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긴 했으나 ‘피 흘리는 혁명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까닭에 책임 규명과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그런 만큼 스스로 과오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당사자의 양심적 결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박근혜 위원장에게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아버지 시대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호소하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의 감동

박흥주 대령 딸·아들 잘 자라

‘증언, 박정희 시대’와 함께 연재된 ‘그때 그 사람’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한층 적극적이었다. ‘김재규 녹취록 편’에서 소개한 ‘박흥주 대령의 유언’을 보고, 정범구 의원처럼 “지금이라도 그 가족들을 돕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오는 독자들도 있었다. 덕분에 박 대령의 서울고 10회 동창회를 통해 가족들 소식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눈물로 아버지의 구명을 호소했던 두 딸은 모두 결혼을 했고, 아들도 군 입대할 나이로 건실하게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사 1호 최종길 교수’ 편에서 동생과 아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노력과 관련해 한 익명의 독자는 “정부를 상대로 기록 공개 소송을 하고, 주검을 부검해서라도 사망의 원인을 알아내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내오기도 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풀뿌리 지역운동에 매진해온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는 정성스런 손편지와 엽서를 필자 김정남 선생과 기자에게 보내왔다. ‘구속자가족협의회 총무 김한림 선생과 ‘민청학련의 홍일점’으로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일찍 떠난 그의 딸 김윤의 이야기’를 보고 “묻힐 뻔한 민주화운동의 수난사를 뒤늦게나마 널리 알려줘 고맙고 감동적이었다”고 적었다.

‘그때 그 사람’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혁당 가족의 후원자’ 박중기 선생은 “겁없이 과찬을 전국에다 늘어놓아 감당하기 어렵다”며 관련 사진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연재의 또다른 성과는 사건 관련 가족과 지인, 연구자 등을 통해 사진 자료를 적잖게 발굴했다는 점이다. 김정남 선생은 “유신독재와 신군부는 정권 위기 때마다 반정부 단체나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민주화세력을 옭아매는 데 사진이나 쪽지 같은 사소한 자료들까지 압수해 단서로 악용했던 까닭에 남아 있는 기록이 드물다”고 말했다.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당사자나 가족들이 지니고 있던 사진도 불태우고, ‘사진 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작사건으로 재판 직후 전격 사형당한 인혁당 관련 인사들이 대표적이었다. 그나마 이수병 선생의 1972년 여름 북한산성 계곡 사진은 함께 연루됐다 살아남은 김종대 <민족지평> 상무가 제공해주었다.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서는 무려 1200여명이 체포되고 180여명이 구속됐지만, 당시 철저한 비공개로 군사재판을 한 까닭에 관련 사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금껏 인터넷 등에서 민청학련 사건 재판 장면으로 떠돌고 있는 사진은 60년대 1차 인혁당 사건 때 것으로 이번에 확인됐다.

서울농대생 김상진의 양심선언 할복사건을 계기로 열혈투사로 사십 평생 짧은 삶을 다 바친 ‘김도연’ 편에 소개된 80년대 중반 문화계 인사들 모습은 부인 나혜원씨가 앨범에서 찾아내 주었다. 인권변론 관련 연재 내내 단골로 등장한 홍성우 변호사가 제공해준 ‘바가지산악회 등산 기념사진’에서는 90년 <감방별곡> 출간 이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 서울구치소 교도관 전병용씨의 모습도 들어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자금 사건과 관련 기사가 나간 뒤, 한 현대사 연구가는 당시 김관석·박형규 목사가 재판을 받는 장면 등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멈출 수 없는 증언

“한류도 따지고보면 민주화 꽃”

“이제야 조금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됐다”(임재동씨)며 계속 독재정권에 대해 연재를 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이번 연재는 ‘박정희 18년에 이은 신군부 12년까지’ 군사독재 30년간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사를 증언하는 전체 구상의 1부에 해당했다.

“이번에 다시 되짚어보니, 빠진 인물들도 뒤늦게 떠오르고 해서,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할 사건들의 목록도 새로 정리를 하게 됐어요. 엄혹한 시대를 견뎌내게 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도 이제는 전하고 싶구요.”

김정남 선생은 70년대 후반부터 87년 6·10 항쟁 때까지 <진실, 광장에 서다>에서 빠졌거나 미흡했던 주요 기록들을 보완해 적절한 기회에 연재를 이어갈 작정이다.

굵직한 대목으로, 초기 재야 명망가에 이어 학생운동권으로 전개된 반유신 투쟁의 중심이 말기로 가면서 노학연대에 의한 이른바 ‘의식화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권으로 확산되는 특징을 꼽는다. 방림방적·동일방직·YH무역·원풍모방 노조의 투쟁사, 도시산업선교회,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농민회, 크리스찬아카데미의 활약상이 그것이다.

또 하나, 70년대가 ‘긴급조치 시대’라면 80년대 시국사건의 특징은 ‘국보법 시대’라 할 수 있다. “전두환 신군부는 ‘박정희 유산의 승계를 거부한다’는 차별화 의도에서인지 중앙정보부 대신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을 동원해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국보법은 기존의 보안법으로는 여의치 않았던 반국가단체 조직 혐의에 대한 사형까지 가능했으니까요.”

그는 특히 국가보안법의 전횡 뒤에 숨어 있던 탄압세력의 실체가 궁금했다며 그 미궁의 일부나마 파헤쳐볼 의욕을 다졌다. 경찰이 마구잡이 가택수색으로 수거해간 사회과학 서적을 감정해서 ‘좌경 불온서적’이란 낙인을 찍어주던 내외문제연구소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 조작을 전담했던 보안사의 이른바 ‘사상 감정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요즘 ‘한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들 열광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민주화의 저력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비로소 문화가 꽃피는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상상력까지 철저하게 억눌렸던 독재시절 청춘들에게는 저항이냐 투항이냐,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잖아요?”

그는 ‘민주화운동 30년의 성과’를 지켜내는 것이 지금 자신을 비롯한 어른 세대들이 해야 할 절박한 시대적 과제이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가치있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주요 장면을 담은 전시회나 숨은 일화들을 발굴해 들려주는 이야기 콘서트 등을 통해 민주화의 경험을 과거사가 아닌 생활문화 속에 뿌리내리게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다. 오는 4월14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막하는 인혁당 37주기 추모 전시회 ‘여보, 단 한순간만 살아서 내게 돌아와주세요’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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