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2008년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후보에게서 돈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한 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보좌진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오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고승덕 ‘돈봉투’ 추가폭로
245개 당협에 300만원씩 건네려면 최소 7억여원
“돈전달자 김효재 아니다 전화온 사람도 말 못해”
245개 당협에 300만원씩 건네려면 최소 7억여원
“돈전달자 김효재 아니다 전화온 사람도 말 못해”
‘판도라의 상자’를 쥐고 있는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주고받은 정황 등을 공개 석상에서 처음 밝혔다. 하지만 해소된 의혹은 많지 않았다. 정확한 배후와 당시 살포된 돈의 규모 및 출처, 돈봉투를 건네받았을 불특정 다수의 의원들이 여전히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고 의원이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밝힌 내용을 추리면, 당시 박희태 후보 쪽이 당권을 거머쥐기 위해 의원들에게 대규모의 돈봉투 살포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고 의원은 이날 “(돈봉투를 건넨 남성이) 노란색 봉투 하나만 달랑 들고 온 게 아니라, 쇼핑백 크기 가방 속에는 똑같은 노란색 봉투가 잔뜩 끼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잔뜩’을 직접 가늠해 보이며 “여러 의원실을 돌면서 돈배달을 한 것으로 보는 게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245개 당협별로 300만원씩이 건네졌다면, 전체 비자금 규모는 7억3500만원가량이다. 이는 박희태 의장이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공식 선거비용(1억868만6859원)의 6.7배다. 고 의원은 최근 동료 의원들에게 “같은 친이계이면서도 관계가 가깝지 않은 나에게까지 돈봉투가 왔을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갔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정몽준 후보는 “자리를 약속하고 금품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데 그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며 “물증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의원은 “보통 아군은 ○표, 반대파는 ×표, 애매한 사람은 △ 표시를 해놓고 주로 △ 표시에 돈을 준다”고 말했다. 고 의원이 당시 박희태 후보를 지지하는지가 불확실한 것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돈이 전달됐을 것이라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고 의원은 지난주 언론 인터뷰에서 “(돈을 건넨) 그분이 당선됐는데 그분과 돈봉투를 전한 분이 같은 친이(친이명박)계에다 자신을 지지한 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싸늘했다”고 말했다. 그는 8일 검찰 조사에서도 “돈봉투를 돌려준 뒤 박희태 대표 쪽 인사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는데 그래서 돈봉투를 보낸 사람을 확신하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선 또다른 ‘배후’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서너차례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도 “답변드리지 않겠다” “말씀드리지 않겠다”고만 말했다. ‘돈을 건넨 인사와 돌려받은 인사가 동일하냐’는 질문에도 고 의원은 “더이상은 (말하기) 어렵다”고만 말했다. 그는 검찰 조사가 11시간이나 걸린 이유를 묻는 질문엔 “진술조서가 67쪽이다”라고 답했다. 검찰에선 관련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 의원 스스로 전·현직 의원이나 과거 당 실세의 연루 의혹을 추가 폭로하는 데 부담과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당내에선 ‘해당 행위자’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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