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한나라당 비대위원이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강창광 기자
김종인 ‘정강 수정’ 발언에
현역 의원들 상당수 반대
박근혜 “국민 먼저 느껴야”
현역 의원들 상당수 반대
박근혜 “국민 먼저 느껴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용어를 빼는 문제를 놓고 당내 반발에 부닥쳤다. 비대위 정책쇄신 분과는 오는 9일까지 정강정책 개정 초안을 만든다는 목표로 5일 회의를 열었으나 ‘보수’ 용어 삭제는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논란은 정책쇄신분과 위원장인 김종인 비대위원이 촉발했다. 김 위원은 4일 언론 인터뷰에서 “‘보수’라는 이야기를 하면 젊은층은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데 이어, 5일에도 기자들에게 “한나라당은 국민정당으로 가야 하는데 특정 부분(계층)만 대변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의 기본 지향점에서 ‘보수’를 지우면서 부자·기득권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한나라당 정강정책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 세 차례의 개정을 거쳤으나 ‘보수’란 표현은 가장 최근인 2003년 개정 때 삽입됐다.
5일 정강정책 개정안을 논의한 정책쇄신분과 회의에서는 ‘보수’ 삭제 쪽이 대세였다. 권영진 의원은 “불필요한 이념갈등을 야기하므로 논의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보수란 용어에 집착하지 말자는 쪽이 7 대 3 정도로 다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역 의원 상당수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정몽준·이재오·홍준표 의원 등 친이계 핵심들은 일제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이날 <오비에스>(OBS) 인터뷰에서 “당의 정체성과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쇄신그룹 정두언 의원도 “제대로 된 보수가 될 생각을 해야지,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빼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수 삭제 논란이 ‘당 정체성 파동’으로 번질 경우, 당내 의원들에게 탈당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보수가 부끄럽다면 한나라당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보수 가치를 버렸다는 반발을 사고, 일부에게 보수신당을 만드는 구실만 주게 된다”고 말했다. 장제원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급기야 중도보수 가치마저 표에 판다니 제가 마음을 접어야겠군요. 이제 정말 떠나야겠네요”라고 적었다.
현실적으로 개정이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강정책 개정은 전국위 의결사항으로, 800명 정도의 열성 보수 당원이 지지할지 의문이란 얘기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이 먼저 느끼면서, 정강정책 등도 고쳐야만 국민의 공감을 더 얻을 수 있다”고 말해 온도차를 보였다.
당 핵심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은 보수란 표현 삭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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