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보았다
정치권의 무기력함을 보았다
누구든 호랑이굴로 뛰어들 차례다
정치권의 무기력함을 보았다
누구든 호랑이굴로 뛰어들 차례다
한마디로 상전벽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발의한 게 8월1일이니 8·24 주민투표, 10·26 재보선까지 석달 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다. 모든 게 급변했다. 오 전 시장의 돌출행동이라는 ‘우연’을 통해 한국 정치의 다이내믹이 관철시킨 ‘필연’은 무엇일까?
첫째, ‘복지 전쟁’에서 진보가 완승했다. 수도 서울은 이제 보편적 복지의 전진기지가 됐다. 교육 자치에 이어 시정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한 이래 10여년 만의 극적인 변화다. 서울에서 진행될 복지 실험의 성패는 곧바로 내년 총선, 대선과도 직결될 수 있다. 이른바 ‘복지입국’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내년 총선, 대선에서 보수 진영이 다시 복지 전쟁을 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큼 무모한 보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 경우 보수는 더욱 크게 패퇴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시대의 요구이고, ‘닥치고 좌회전’ 하라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다. 지난 3개월을 거치며 문제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제대로,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느냐라는 게 분명해졌다. 오세훈의 돈키호테식 역주행은 도도한 민심의 흐름이 어디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둘째, 2040 세대의 ‘봉기’를 통해 기존 정치권의 무기력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20대, 30대, 40대의 아픔과 분노 하나하나가 한표, 한표 올올이 쌓여 몰표가 나왔다. 복지 전쟁을 이끈 주력부대가 이들이다. 4대강과 디자인 서울로 대표되는 ‘빛 좋은 개살구 식’ 토건주의가 철퇴를 맞았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한 2040 세대들은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 무적함대다.
청와대의 대통령실장이 선거 직후 ‘사퇴 쇼’를 하다 슬그머니 들어가고, 한나라당이 에스엔에스 전문가를 영입한다며 허둥대는 것은 한마디로 별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선거 이후 쥐 죽은 듯 조용한 것은 내상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여권 전체의 정치 일정은 모두 ‘꽝’이 났다. 이 대통령은 물론 박 전 대표조차도 분노한 민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셋째, 석달간의 산고 끝에 시대정신을 담을 새 그릇들이 출현했다. 안철수란 이름은 이제 고유명사가 아니라 2040 세대의 분노와 아픔을 대변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출마할지 안 할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본인도 아직 모를 것이다. 하든 안 하든 그건 자유다. 저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민심은 제2, 제3의 안철수를 또 밀어올릴 것이다. 특정 인물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변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정치행위를 누가, 어느 집단이 제대로 하느냐의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은 새 그릇을 만드는 좋은 본보기다. 박 시장이 야권통합 경선이라는 새 장을 만들어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는 순간 절반쯤은 서울시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선거 구도가 그랬다. 안철수 교수의 최근 언행은 매우 정교한 아웃복싱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 대선 레이스를 보면, 장외에서 아웃복싱만 하며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다 제풀에 꺾인 이들이 여럿 있다. 정치적 맷집, 정치적 근육은 아웃복싱만으로 단련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듯, 안철수 바람도 이제 거품 빠질 일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안철수든 누구든 민심의 바다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민심을 믿고 호랑이굴로 뛰어들어야 한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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