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및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 연석회의에서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인상에 따른 수입증가액을 적은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고위원들 “합의 안돼” 한소리
손 대표 상황관리력 문제 지적도
손 대표 상황관리력 문제 지적도
‘수신료’ 하루만에 번복
23일 아침 민주당 지도부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전날 한나라당과 합의한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안 6월 국회 처리’를 놓고 국회 대표실에선 긴급 최고위원회가 열렸고, 곧이어 옆방 원내대표실에선 김진표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고위정책회의가 열렸다. 김 원내대표는 최고위에 잠깐 참석한 뒤 고위정책회의로 옮겨갔다.
최고위원들은 이날 수신료와 관련된 해당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들과 함께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고위원들은 “수신료 1천원 인상안을 무조건 합의해주면 안 된다”는 데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열리는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을 출석시켜 한국방송이 공정성·중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얼마나 충분히 마련했는지 따져보고 표결처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몸싸움을 해서라도 막아야 할 것은 막아야 한다”며 “이는 단지 수신료 인상안의 문제만이 아니라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될 것인지, 한나라당의 이중대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이건 큰 틀에서 당의 노선 문제”라며 “작은 전투에서 깨질 것을 두려워해 노선을 흔들게 되면 큰 싸움에서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야4당은 지난 4월13일 정책연합 합의문 7항에서 ‘KBS 수신료 인상 저지’를 못박은 바 있다.
결국 손학규 대표는 “인상안 처리 반대에 아무 이견이 없으니 반대하는 걸로 합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참석자는 “손 대표는 회의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고 전했다.
하루 만에 민주당 입장이 바뀌자 누구보다도 곤혹스러운 이는 전날 합의를 주도했던 김진표 원내대표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가 손 대표한테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손 대표에게 두번이나 전화해 문방위 상황을 전하며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으면 당할 수 있으니 24일, 28일 상임위를 여는 걸로 기회를 확보하는 방안을 얘기했다”고 항변했다. 또 “손 대표는 ‘원내대표에게 일임할 테니 문방위원들과 논의해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대표의 한 측근은 “김 원내대표는 이미 합의를 다 하고 나서야 보고했다”며 “손 대표가‘의원들하고 충분히 협의했냐’고 묻자 김 원내대표는 ‘그렇다’고 답했고 손 대표는 ‘그럼 알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내에선 김 원내대표가 오는 27일 영수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물리적 충돌을 피하려다 보니 ‘한국방송의 선결조건 이행’이란 전제를 분명히하지 않고 합의안을 마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손 대표의 상황관리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된다. 합의안을 사후에 보고받았더라도 잘못됐다고 판단했다면 즉시 조처를 취해야 했지만 그는 다른 최고위원들이 문제제기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이 발이 꼬인 게 맞다. 그래도 전날 밤 지도부 사이에 얘기가 많이 오가며 제대로 바로잡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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