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정동영 최고위원(왼쪽), 박지원 원내대표와 함께 9일 밤 서울광장에 설치한 천막 앞에서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엔 결코 물러설 수 없어”
서울광장서 100시간 농성돌입
서울광장서 100시간 농성돌입
서울광장에 다시 천막이 들어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당 소속 의원들이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에 항의하며 100시간 노숙농성을 벌이기 위해 9일 밤 설치한 천막이다.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는 일단 접었다. 대신 100시간 시한부 농성을 끝낸 뒤 지역 대의원대회와 규탄대회를 겸한 권역별 순회집회를 열기로 했다. 의원들에게는 두 달간 해외여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손 대표는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상임위를 열어 따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예산국회에서 집요하게 물고늘어졌어도 얻어낸 게 없지 않았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정치투쟁”이라고 말했다. 발언의 강도도 어느 때보다 강했다. “이번만은 결코 민주당이 물러서지 않겠다”며 “국민과 함께 이명박 독재를 심판하고 정권퇴진 투쟁을 전개하겠다”고까지 했다.
민주당이 고민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국민이 원외투쟁에 지지를 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잘잘못을 떠나 국회 파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대체로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추위가 본격화되는 시기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겨울철 원외집회에 대규모 당원을 동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권역별 집회에 앞서 예산안 무효화를 위한 지역별 서명운동을 10일 시작하기로 했다. 날치기의 불법성을 알리는 의정보고서를 작성해 배포하는 한편, 날치기 법안의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한 법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이날 제안한 야5당·시민단체 비상시국회의에 대해선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장기간 투쟁을 위해선 당내 동력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춘석 대변인은 “날치기에 분노하는 시민들조차 민주당이 반짝 투쟁을 벌이다 국회로 돌아가는 수순을 반복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최소 1개월은 꾸준하게 장외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에서는 즉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장외로 나가야 한다는 강경론(정세균·천정배·박주선 최고위원)과 의원단 전체의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한다는 신중론(박지원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맞섰지만,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의원직 총사퇴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핵심 당직자는 “의원직 사퇴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국고보조금을 반납하고 보좌진들의 급여지급도 거부해야 하는데, 그런 상태로 장외로 나가서 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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