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연평도 K-9 자주포 진지 현장사진 공개=지난 23일 북한이 해안포 170여발을 연평도에 발사한 가운데 국방부가 25일 해병대 K-9 자주포 진지를 공격하는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위 사진은 해병대 정훈장교가 촬영한 것으로 K-9 진지가 북한이 쏜 포탄의 공격을 받자 대응사격을 준비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데프콘’ 왜 격상 안했나
격상 권한 지닌 유엔사
미국 연루안되면 소극적
격상 권한 지닌 유엔사
미국 연루안되면 소극적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이후 군 당국이 전쟁준비 단계인 ‘데프콘 3’이 아닌, 국지도발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을 두고 보수세력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북 전투준비태세를 뜻하는 데프콘(Defcon)은 1~5단계로 구분되고 숫자가 낮을수록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군은 1953년 정전 이래 데프콘 4를 유지하고 있다.
데프콘을 격상하지 않은 것에 대한 군 당국의 설명은 “이번 사태를 국지적 도발로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이 데프콘 격상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정황은 많다. 포격전 직후인 23일 오후 한민구 합참의장이 월터 샤프 연합사령관과 만나 데프콘 격상의 수순인 ‘연합위기관리’ 선포를 검토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데프콘 3이 발령되지 않은 것은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바라지 않는 미국의 입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한-미 관계에 밝은 전문가들 분석이다.
실제 ‘데프콘 3’이 발령되면 우리 군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넘어간다. 데프콘 격상 권한 역시 연합사령관에게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이 직접 연루된 사건이 아닌 경우엔 데프콘 격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기습사건(1·21사태) 직후 한국의 강력한 요구에도 데프콘을 격상하지 않았던 게 대표적이다. ‘데프콘 3’이 발령됐던 1976년 도끼만행 사건은 미군 장교가 희생당한 경우다. 1983년 아웅산 사건 직후 데프콘 3이 발령됐지만, 국가원수의 생명이 위협당하고 17명의 각료와 정치인이 희생된 초유의 테러사건이란 점에서 이번과는 강도가 다르다. 데프콘을 격상하지 않았다고 우리 정부를 상대로 따지는 것은 ‘우물에 가 숭늉 찾기’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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