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앞줄 왼쪽 둘째)와 박석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맨 왼쪽),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오른쪽 둘째) 등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대표자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굴욕적 재협상 강행’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미국 퍼주기 협상 명백해져”
재협상파·반대파 한목소리
재협상파·반대파 한목소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야권의 태도가 ‘비준 거부’ 쪽으로 빠르게 기울고 있다. 1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동차 등 핵심분야에서 미국에 추가 양보를 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정부를 상대로 원안 관철이나 전면 재협상을 압박하는 게 정치적 실효를 갖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에서다. ‘전면 재협상론’(독소조항 개정론)과 ‘추가협상 불가론’(선대책 후비준론)이 팽팽하게 맞서온 민주당은 이번주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비준 거부’(협정 무효화)를 공식 당론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해온 손학규 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한-미 협상이) 재협상이 아니라 조정이라고 말을 돌리지만, 결국 내용은 추가 양보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협상에서) 양보하거나 국익을 저버린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퍼주기 협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전면 재협상에 반대해온 정세균 최고위원도 “과거엔 ‘선대책 후비준’이란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지금처럼) 이명박 정권이 자존심을 짓밟고 국익을 내주는 상황이 된다면, 그런 한-미 에프티에이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 쪽은 “(노무현 정부 시절) 어렵게 맞춰놓은 이해의 균형추를 추가 협상을 통해 미국 쪽에 기울게 한다면 협정 자체를 백지화하는 게 낫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동영 최고위원과 함께 ‘전면 재협상론’을 선도해온 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퍼주기 협상을 진행한 게 명확해진 이상 협정 원안이 잘 된 건지 못 된 건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며 “남아있는 논리적 선택지는 비준 반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 최고위원은 “원내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별개로 다른 야당, 시민단체와 범국민 투쟁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서울 종각 앞에서 의원단·최고위원단 노숙농성(11일 시한)에 돌입했다. 이정희 대표는 농성에 앞서 “국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전면 재협상에 돌입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한-미 에프티에이를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당은 9일 오전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에프티에이 추가 협상을 규탄하는 회견을 열며, 매일 저녁 6시 종각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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