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후보들 “친북세력 심판론” 들먹
야당선 “전쟁이냐 평화냐 기로” 맞불공세
4대강·세종시·무상급식 등 정책이슈 실종
야당선 “전쟁이냐 평화냐 기로” 맞불공세
4대강·세종시·무상급식 등 정책이슈 실종
블랙홀이다. 안보 쟁점이 부각되면서 민생 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4대강도 세종시도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선거판 자체가 사라져버린 형국이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28일까지 생활 이슈 등 선거 쟁점이 천안함에 묻혀 전혀 부각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선거 절차와 내용의 파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정책적 견해차에 대한 논의와 설득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선거가 치러질 경우 민의 왜곡에 따른 사회갈등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정부가 천안함 사태를 이용해 북풍몰이를 하면서 천안함 사고 직전까지만 해도 선거판을 달궜던 무상급식 등 생활정치·복지 이슈들이 모두 실종돼 버렸다”며 “유권자들이 삶의 질 향상이란 잣대로 후보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선을 지상목표로 하는 정치권은 여전히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활용하는 데 혈안이다. 한나라당이 반북 대결 논리를 고조시키면, 민주당 등은 안보무능·경제위기론 등으로 맞받아치는 식이다.
그동안 ‘천안함 특수’를 톡톡히 누린 한나라당은 ‘안보를 선거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고조되자, “정책 대결로 복귀하자”며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고흥길 선대위 부위원장은 28일 선대위 실무대책회의에서 “선거가 안보논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런 일”이라며 “정상적인 선거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모습은 한나라당의 이런 공언이 구두선에 불과함을 실감케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는 이날 하남시를 찾아 “북한은 욕하지 않고 대통령만 욕하는 친북 반정부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김정일 친북세력 심판론’을 주창했다. 정우택 충북지사 후보는 이날치 지역일간지 1면에 ‘대북 퍼주기 4조원이 어뢰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이에 맞서 민주당 등 야 4당은 ‘전쟁이냐 평화냐’란 논리로 맞불을 놓고 있다. 한명숙·유시민·송영길 후보는 이날 ‘수도권 범야권 단일후보’ 명의로 대국민 호소문을 내 “지금 한반도는 전쟁이냐 평화냐, 공멸이냐 공생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이명박 정권의 선거용 전쟁놀음을 심판하고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 4당은 이날부터 선거 때까지 광화문광장 등에서 야간 촛불유세를 펼치기로 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정신을 되살려 ‘전쟁세력 심판’을 호소하겠다는 뜻이다.
안보 쟁점이 선거판을 휩쓸면서 한나라당이 최대 수혜자가 됐다는 데는 정치권에서 이견이 없다. 야당의 정권심판론은 힘을 잃은 반면, 여당 지지층은 급속히 결집하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최대의 피해자는 야당이 아니라, 생활 이슈에 대한 선택권을 상실한 지역 유권자라는 지적이 많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교육, 복지, 육아, 재정, 부패 등 지역의 생활 의제가 이슈화한 사실상의 첫 선거였다”며 “지방정치를 정상화할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킨다면 여당이 승리하더라도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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