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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하루전 2천쪽 제출
A4용지 반장 달랑 주기도
A4용지 반장 달랑 주기도
국회법 ‘10일이내 제출’ 명시
힘 약한 야당 고발도 쉽잖아 정부 기관들의 막무가내 자료 제출 거부와 불성실한 답변이 ‘알맹이 없는 국감’, ‘방탄 국감’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자료 제출 거부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독 심한 것 같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국감을 할 수 있겠느냐”(조기호 민주당 보좌관협의회 부회장)는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지난 12일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정감사는 자료 제출 거부 문제로 시작부터 파행했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9월2일 요구한 자료가 어젯밤 9시에야 도착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가 이날 받은 답변 자료 분량은 무려 2000여쪽에 이른다. 양 의원은 “이런 막대한 분량을 국감 하루 전에 제출한 것은 검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뒤이어 “자정이 넘은 1시쯤에 사무실에 왔지만 요청한 감사자료가 오지 않았다”(최영희), “있는 자료를 없다고 했다가 어제야 보냈다”(전현희)는 민주당 의원들의 추가 항의가 빗발친데다 한나라당 의원들마저 비판에 가세하면서 결국 건보공단 국감은 15일에 다시 하기로 했다. 같은 날 열린 국립환경과학원 국감에서도 자료의 ‘늑장’ 제출이 도마에 올랐다. 국립환경과학원이 4대강 사업 관련 수질예측 기초자료를 제출하라는 김재윤 민주당 의원의 요구를 6개월 동안이나 묵살하다가 이날 국감 시작 30분 전에야 내놨기 때문이다. 역시 16상자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윤승준 국립환경과학원장은 “자료를 악용할 소지가 있어 미리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사 시작 코앞에 자료 제출을 하는 것은 아주 ‘고전적’ 수법이다. 피감기관들은 무조건 ‘없다’고 발뺌하거나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없다’던 자료가 엉뚱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총리실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한 신종 플루 여행 경고 대상국이 외교통상부 자료에는 대국민 홍보사항으로 돼 있더라”는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말은 이를 입증한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 역시 “통계청이 동일한 자료를 기획재정위원회 입법조사관에게는 제출하고 본 의원실에는 제출이 어렵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은 총리실 공직 윤리지원관실에 자료를 요구했다가 “묵비권 행사를 하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기도 했다. ‘있으나 마나 한 답변’을 보내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현희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에이(A)4지 2장 분량으로 10개 문항의 질문서를 보냈더니, 질문을 마음대로 짜깁기해 에이(A)4지 반장짜리로 답변한 게 대표적이다. 국회법은 국회가 요구할 경우 피감기관들은 10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국회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은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것도 증언을 거부하는 것과 똑같이 보고 있어, 국회 위원회가 고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의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아 정작 자료 제출 문제로 고발당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조 보좌관은 “피감기관들의 자료 제출 거부가 나날이 심화하는 근본 원인은 야당이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당의 의석을 다 합쳐봤자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을 낼 수 있는 100석이 안 되는데 뭐가 무섭겠느냐”는 것이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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