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후보 자료요청 275건 중 103건 제출안해
민주당 “자료때문에 이렇게 고통받은 적 없어”
민주당 “자료때문에 이렇게 고통받은 적 없어”
후보검증 막는 정부기관들
정부가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요구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청문회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경우 민주당이 국무총리실과 서울대 등 17개 기관에 275건의 자료를 요청했지만, 20일 현재까지 이 기관들은 ‘제출 불가’(33건), ‘자료 없음’(43건), ‘확인중’(27건) 등의 이유로 103건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또 부실한 답변도 53건에 이른다. 강운태 민주당 의원은 이날 “16대 이후 총리 인사청문위원을 3번째 맡지만 자료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은 적은 없었다”며 “최소한 최근 5년간 연도별 소득 증감과 재산 증감 사항, 2004~2005년 수입과 지출 상세 내역, 외국 기업 고문료·자문료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4가지만이라도 내달라”고 호소했다.
정부 기관들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내세우는 명분도 가지가지다.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개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많이 쓰이는 ‘모범답안’이다. 하지만 개인 사생활 보호의 범위가 자의적이고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때 ‘박연차 게이트’와 ‘비비케이’(BBK)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검사의 명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들어 주임검사 등 윗선 3명만 공개해 한참 동안 공방이 이어졌다. 앞서 지난 2월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경한 법무장관 청문회 때도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청와대 출입기록’ 공개가 거부됐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는 일반인의 청와대 출입기록까지 공개하며 정치적 공격을 일삼더니 그때와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꼬집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거부 사유들도 적지 않다. 관세청은 정 총리 후보자와 가족의 공항 면세점 구입 내역 요청에 “면세점 쪽에 요청하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16, 17, 18대 총선 때 재산신고등록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청에 “선거일 이후에는 공개 못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들이대며 이미 공개됐던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지난 6월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전세 계약서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이사 도중 잃어버렸다”고 답변했다가, 언론을 통한 의혹이 거세지자 부동산에 집을 내놓을 당시 부동산 업자가 손으로 기록해 놓은 장부를 복사해 제출하기도 했다. 또, “확인 중”이라며 청문회 당일까지 자료를 고의로 지연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정부의 불성실한 청문회 요구 자료 제출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담당하는 의원실에선 “우리가 사설탐정이냐”는 한탄이 터져나올 지경이다. 민주노동당의 한 보좌관은 “일단 언론을 통해 의혹을 퍼뜨린 뒤 해명자료를 받아내기도 한다”며 “사실상 정부가 제대로 된 검증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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