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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도정일 “야만적 역사, 다시 반복”

등록 2009-08-25 19:52수정 2009-08-26 06:55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왼쪽)가 2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겨레 시민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회자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왼쪽)가 2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겨레 시민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회자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시민포럼’서 정치 실천 등 시민사회 역할 강조

“야만은 먼 원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우리 사회, 국가, 문명 속에 있다.”

제19차 한겨레 시민포럼의 발표자로 나선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했다. “잠시 성취한 것처럼 보였던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들이 내팽개쳐지고 한 시절의 역사적 진전들이 뒷걸음질을 강요당하는 퇴행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 교수는 25일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이란 주제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민포럼에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삶의 영광과 기쁨을 박탈하는 야만의 역사는 멀게는 식민주의와 전체주의에서, 가깝게는 광복 이후 한국인을 속박한 독재와 권위주의에서 발견된다”며 “그 역사는 사라지거나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의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도 교수는 이런 야만의 시대를 뚫고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문학적 성찰”이라고 했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식을 핵심으로 삼는 인문학적 사유에는, 야만의 역사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런 역사의 고통과 실패를 부단히 기억하고 환기시킴으로써 야만의 재발을 차단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또 모든 전체주의와 파시즘, 독재에 반대하는 정치적 실천을 동반한다. “인간의 품위와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은 인간에 대한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며 “전체주의와 독재는 인간의 자유와 품위를 훼손하고 그 창조성을 말살하는 야만의 체제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행복·번영·발전의 허상에 빠져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성찰과 교정의 능력을 스스로 정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도 교수는 “야만의 시대를 헤쳐 나갈 삶의 지혜는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며 “그 시민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시민사회를 지탱할 민주적 자질과 공동체를 유지할 선의·연대·협력·신뢰·자립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방청석에는 최근의 시국과 관련해 울분과 답답증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용산참사 현장의 추모 미사에 수십 차례 참석했다는 한 50대 남성은 “김수환 추기경 죽었을 때 명동성당을 찾은 추모객의 천분의 일만 용산의 분향소를 찾았어도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왜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남성은 “우리의 앞세대는 경제 성장이나 민주화 등 세대가 공유하는 목적이 있었지만,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우리들은 취직을 위해 영어 공부 하고 ‘스펙’을 쌓는 일밖에 없다”며 젊은 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도 교수는 “루쉰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밖에 약이 없다’고 했지만, 미친개가 몽둥이를 들고 날뛰는 듯한 요즘 같은 상황에선 할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말에 “변함없는 사실은 몽둥이를 들었어도 미친개는 미친개라는 것”이란 답변으로 청중들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날 시민포럼에는 10대 청소년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지금의 시국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실감케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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