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해 국회에서 이틀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왼쪽)가, 20일 오전 농성장으로 찾아온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인사말을 건네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세균 대표 단식 이틀째
찾아온 정동영 의원에 “야권 힘합쳐 싸워야”
박희태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는 날선 신경전
찾아온 정동영 의원에 “야권 힘합쳐 싸워야”
박희태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는 날선 신경전
‘미스터 스마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언론 관계법 저지를 위해 모든 걸 걸겠다”며 단식 농성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20일, 정 대표는 당 대표실 바닥에 앉아 지지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그는 방문객이 없는 시간에는 성경과 ‘백범일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으며 언론관련법 저지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정 대표는 이날 언론노조 관계자들과 한명숙 전 총리, 정대철 상임고문 등을 잇따라 만나 “사즉생의 각오로 잘 싸우겠다”고 밝혔다. 단식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정 대표가 “(여당이) 숫자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제대로 대항할 길이 없어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나라당과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대치는 지난 4·29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관계가 껄끄러워진 정동영 의원과의 자연스러운 만남도 가져왔다. 정 의원이 단식 중인 정 대표를 응원하기 위해 방문했고,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용산 재개발 지역 철거민 사망 등 현안과 관련해 “야권이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농성장을 찾은 한나라당 지도부와는 싸늘한 신경전을 벌였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농성 중단을 요청하며 “악법의 판단 기준을 바꿔야 할 것 같다”(박 대표), “엠비(MB) 악법이란 말에서 엠비를 빼달라”(박순자 최고위원)고 말하자, 그는 “청와대가 이런 저런 지시를 하고 당이 하위개념으로 전락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우리가 과감하게 수정한 안을 집권여당이 잘해 달라”고 일축했다. 정 대표의 이런 강경한 태도에 박 최고위원은 “부드러운 분인데 강성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한나라당에 많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이처럼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등 초강경 입장으로 돌아선 데는 “야당으로서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이 작용했다고 한다. 실제 정 대표의 평소 언행에 비춰보면, 그의 단식농성은 뜻밖이다. 정 대표 주변에서는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강행처리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정 대표의 단식농성 돌입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최근까지 “단식농성은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가 없이 국민 앞에서 쇼 하듯, 유행처럼 해서는 안 된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돌려 말하면, 언론 관련법의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서 ‘죽을 각오’로 단식에 임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단식과 삭발, 의원직 사퇴까지 거론하고 있는 만큼, 당 대표로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 성공적인 투쟁을 이끌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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